2017년 12월 7일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세미나 개최
통일 한반도 국토정책 방향,
통일시대 대비
북한건축 이해와
우리 역할 모색

2004년 북한 신의주 방문 때와
2015년 개성공업지구
북한 주민 모습 생생
건축사 힘으로 잿빛도시를
무지개 빛 도시로 바꾸는
꿈이 이루어지길


필자는 2004년 평북 용천역 폭발사고로 인한 용천 소학교의 피해 복구를 지원하고자 처음으로 건축사협회가 소속돼 있는 건설단체연합의 대표 자격으로 중국 단동을 경유하여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 끝 북한의 신의주와 용천을 방문하게 됐다.
신의주는 북한 제1의 변경무역도시다. 인구 76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북·중 교역의 70%가 신의주-단둥에서 일어난다. 1909년 경의선,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면서 만주 철도와 이어지는 국제관문도시가 됐다. 압록강 수계의 전력을 이용한 화학·제분·제련 등 대형공장이 속속 들어섰다. 1970년대만 해도 중국 단둥은 한촌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개방과 북한의 폐쇄가 상황을 역전시켜 단둥이 경제적으로 신의주를 지배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석유가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 유일한 곳이 단둥이며, 단둥 강변을 따라 고층 건물이 즐비한 반면, 신의주의 낡은 주택과 공장은 멈춰 있다. 특히 신의주는 2001년 중국 상하이를 다녀온 김정일이 직접 개발을 지시해 특구로 지정된 바 있다. 필자는 2004년 당시 신의주역에서 기송달 물자를 점검하고 신의주 여관에 기거하면서 지원 범위 등을 협의하고 돌아왔다.
학교가 준공된 2005년, 용천소학교의 환영 행사에 초대되어 신의주에서 비포장 10여 km를 달려 용천소학교에 도착했다. 나무 없는 민둥산, 어쩌다 지나가는 자동차로 도로는 몹시 쓸쓸했다. 어린 학생들은 “우리 수령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학교를 주셨다”며, 단체 통곡 유희를 했을 뿐이며, 친절한 교장마저도 감사의 인사는 없었다. 앞에 걸려 있는 두 수령의 사진은 우리가 제공한 교실과 칠판, 걸상, 노트를 겸연쩍게 응시했다.
용천 거리는 새로 건축한 주체 사상탑만이 위력을 뽐내고 있었을 뿐 주민들은 우리와의 눈을 마주치기는 것을 꺼려하는 듯 보였으며, 무언가 호소하는 어두운 눈빛만이 잿빛 도시와 함께 지금도 그 풍경이 눈에 아련하다.
10년 후인 2015년, 필자는 남북교류협력위원 자격으로 유지관리점검을 위해 개성공업지구를 몇 차례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공단 주변 마을의 주거와 학교시설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50∼60년 전의 모습보다 초라하고, 획일적인 주거 형태로서 자전거탄 가장과 두셋 아이들이 눈에 띌 뿐 잿빛 마을 풍경은 10년 전 신의주보다 더 나아진바가 없었다.
그러나 일하는 공원들의 생기 있는 표정은 신의주나 용천의 주민들과는 사뭇 달라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나, 2016년 2월 공단 전면중단 사태로 인해 그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간지도 어느덧 20개월이 지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점진적인 통일을 꿈꿔왔으나, 북한은 60여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올해 9월 6차 핵실험 성공으로 핵탄두 미사일 장사에 나설 것이란 예측을 주목해 볼 때 「체제 유지」까지도 양보할 의지가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닭 쫓던 개」의 입장에 비유해야 하지 않은지 우려스럽다.
점진적 통일은 인류 역사에 없었다고들 한다. 이제 북한의 「급진적 변화」만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예상하며 이를 위해 통일 정부를 도와 우리 건축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올바른 방향을 찾아보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 먼저 통일 시대로 가기 위해 동북아의 큰 틀에서 길을 찾은 후 ▶ 통일 한반도의 국토 정책 방향을 살펴보고, ▶ 현재의 평양 도시 공간에 대한 건축전문가의 시각과 ▶ 탈북 건축학도의 남북한 건축 비교를 통해 통일시대를 대비한 북한 건축의 이해와 우리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머지않아 우리 건축사들의 힘으로 잿빛도시를 「무지개 빛」 도시로 바꾸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2017년 12월 7일 오후에 부디 많은 참석 바라며, 많은 격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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