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추억

정익현 건축사l승인2017.07.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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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런 분들이 있기에
이 사회는 온기가 있다


한 달 전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일을 본 후 차를 이동시킨다는 것이 깜빡 잊고 몇 시간을 그냥 세워두어 결국 과태료 통지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요즘 받게 되는 우편물의 대부분은 홍보물이나 결혼 청첩장 그리고 이런 과태료 통지서가 고작이다.
몇 십 년 전 통신 수단은 편지나 전화였는데 전화는 흔치 않아서 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일반 우편물은 가는데 2-3일, 즉시 답을 보낸다하더라도 받는데 또 다시 2-3일 소요 되었다. 그래도 누구나 5-6일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그때의 정서였다. 어쩌다 시외전화라도 할라치면 전화국에 가서 신청을 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손전화로 국제전화까지 할 수 있는데도 문자메시지의 답이 좀 늦으면 조바심을 낸다.
오래 전 대학 2학년 때로 기억된다. 교양과목 중 부담이 가는 과목이 있어서 학점이 나오지 않을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나는 방학이 시작되자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서울친구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내려 왔다. 학점이 나왔으면 ‘Song of joy’, 나오지 않았으면 ‘Sad movie’ 라는 노래 제목을 암호(?)로 해서 편지를 보내주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우체국집배원이 다녀갈 때마다 누가 편지를 볼까봐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다행히 친구로부터 ‘Song of joy’라는 암호를 받았을 때 우체국집배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우체국집배원의 고마움을 잊은 듯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받는 우편물이 본인에게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데 있지 않나 싶다. 컴퓨터나 손전화로 얼마든지 쉽게, 빨리 보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애·경사에 가급적 우편물을 이용하는 분위기이다. 비록 그것이 손으로 직접 쓴 것이 아닌 인쇄물일지라도 우편물이 갖는 어떤 정성 때문이리라.
얼마 전 어머니 장례조문 답례편지에 받는 사람의 주소를 일일이 손으로 썼다. 그리고는 새 우편번호를 찾아 써 넣으려 하니 쉬운 일이 아니어서 포기했다. 시청구내 우편취급국에 갔더니 국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전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 국장 밑에 여직원으로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국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밑에 직원이 없다. 혼자 하기에 벅찬 업무 같은데 항상 웃는 낯으로 고객을 맡는다. 내가 우편번호를 못 적었다고 하니 한 통 당 90원을 더 내라고 한다. 여기는 ‘요금별납’이 안 되어 일일이 우표를 붙여야 하는데 대신 붙여줄 테니 계산만 하고 가라 한다. 적지 않은 물량이라 너무 미안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나는 숙달 되어서 빨리 한다”며 어서 가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고맙습니다. 전*선국장님!’
이달 초 안양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우체국 집배원이 결국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이 있었다.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그 분들이 격무에 시달려 과로사 혹은 자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하니 가슴 아픈 일이다.
유치환 시인이 생전에 20년간 이영도선생에게 보낸 1,500여 통의 편지도 우체국 집배원이 없었으면 보내지지 않았을 것이고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시(詩) 「행복」의 구절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으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런 분들이 있기에 이 사회는 온기가 있다. 그 분들이 배달해 주는 편지만큼이나 따뜻한 삶을 그 분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정익현 건축사  jih281@hanmail.net 예전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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