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간집에 산 퇴계선생
주변산천을 내 것으로
연꽃 돌확 속에 우주가
풍요롭게 사는 법
선조들에게 배워야


아침 신문에 활짝 핀 연꽃 사진과 함께 전국에서 연꽃축제가 열린다는 기사를 보니 퇴계선생의 거처인 도산서당 곁의 한간짜리 작은 연못이 생각난다. 연꽃은 불가(佛家)의 꽃이지만 열 가지 덕이 있다하여 선비들도 좋아했다. 즉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이제오염(離諸汚染), 연잎과 연꽃 위에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물지 않는다는 불여악구(不與惡俱), 청정한 삶의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 향기가 충만한 계향충만(戒香充滿)에서 시작하여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개부구족(開敷具足)과 날 때부터 다른 생이유상(生已有想) 등이다. 그 외에도 연꽃은 차로, 연근과 연잎은 반찬과 밥으로 식탁에 오르며 씨는 소화불량, 불면증의 약재로 쓰인다.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내(川)가 없으면 못을 팠다. 십덕(十德)을 본받고자 연을 심으면 연당(蓮塘)이요, 맑은 물에 비치는 달빛과 물그림자를 완상하기 위해 그대로 두면 월지(月池)이다. 월지에는 잉어를 길러 부모를 봉양하기도 했는데 더 큰 뜻은 자식들의 과거급제에 있었다. 물고기가 물살이 세고 거친 중국의 용문에 뛰어 올라 용이 되었다는 어성변룡(魚成變龍)의 고사를 연결시킨 것이다. 선조들은 이토록 무엇을 만들던 정신과 실용을 함께하였다.
도산서원에서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도산서당은 완락재란 방 한간, 암서헌이란 마루 한간 그리고 부엌이 있는 기와삼간의 작은집인데, 유정문(幽貞門)이라 멋진 이름을 단 대문은 초가삼간에나 어울리는 사립문이다. 그는 한간짜리 작은 연못을 만들어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그 아래 우물을 파 몽천이라 하였다. 또한 담장 너머에는 매화와 국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절우사(節友社)라 명명하였다. 그뿐 아니라 주변의 산천에도 천연대 곡구암 탁영대 반타석 부용봉 등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사십 여 수의 시로 읊으니 바로 도산잡영(陶山雜詠)이다. 이로써 그의 집은 노졸하였으나 남의 땅인 주변산천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아니 변함없는 산천을 격상시켜 모두에게 재분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서나 삶의 지혜와 진정한 구도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하니 이보다 더 큰집이 그 어디에 있으며 이토록 풍요함이 그 누구에게 있을까 싶다. 조선 후기 학자 홍길주나 경북 안동의 치암고택 등 많은 사대부가들도 퇴계와 같이 방 마루 문은 물론 못과 정원 등 곳곳에 자기수양과 목표를 향한 이름들을 현판으로 만들어 걸었다.
출근 후 특검 때문에 노원구청에 들어서니 금속제 돌확 속에 활짝 핀 연꽃들이 좌우에서 반긴다. 오늘은 연꽃과 인연이 있는 날, 그 중 하나를 내 집으로 옮겨 볕 잘 드는 베란다에 놓고 퇴계선생의 정우당보다 더 멋진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리하면 연꽃돌확은 나의 초등학교 운동장 옆 큰 연못처럼 커질 것이다. 생각난 김에 아파트 출입문과 거실에도 근사한 이름을 지어 붙이고, 나의 서재에도 혼자 부르기만 하던 양촌재(陽村齋)를 목각하여 걸고 싶다. 생각만해도 마음은 싱그럽고 풍요하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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