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의 노부모들은
천정의 층간 소음도 반기는데
층간소음을 차단하는 건축사들은
어떻게 부모를 모시고 있는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하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기본적으로 집이란 울타리 안에서 영위되는 최소의 공동체이며, 그 속에는 자녀들을 위한 어버이의 사랑과 어버이에 대한 자녀들의 공경이 있다. 그렇기에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들에겐 가정의 달이 더욱 뜻 깊게 다가온다. 지금은 전 국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연립과 다세대까지 합치면 공동주택 인구가 6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만해도 많은 도시민들은 온 가족이 거처할 셋방 한 칸을 구하는 데에도 복덕방 비를 아끼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강신애 시인은 그의 시 ‘액자 속의 방’에서 셋방 얻기의 고달픔을 「생활정보지를 펼쳐 아홉 번째 ×를 그리면서 /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걸어 다닌 일생의 거리를 생각해 본다」고 읊조리고 있다. 그리고 성찬경 시인은 ‘나의 집’에서 「주문 찍힌 잡동사니가 / 탑처럼 쌓이는 유기질 동굴, / 드러누우면 / 북통만 한 방이 슬그머니 늘어나」 는 좁디좁은 방에서 「어린것들은 / 유년의 마술로 기적소리를 내며 / 책상다리 사이로 만국유람을 한다」면서 「다행히 가난이 나의 편을 들어주어 / 집이 좁아질수록 / 깊이 뻗는 뿌리」라며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내리사랑을 떠나 치켜 사랑인 효를 집으로 표현한 구전 요를 보자.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이 놀던 달아 /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 계수나무 박혔으니/옥도끼로 찍어내고 / 금도끼로 다듬어서 / 초가삼간 집을 짓고 / 양친부모 모셔다가 / 천년만년 살고 지고 / 천년만년 살고지고」
부모님 방과 내방 그리고 부엌이 있는 초라한 삼간집이지만 옥도끼와 금도끼를 사용할 만큼 지극정성의 효심이 묻어난다. 이 어찌 남의 손을 빌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비하랴. 이렇듯 사랑과 공경으로 뭉친 가족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젊은이들은 취업과 내 집 마련에 지쳐 절반은 결혼을 포기하고, 늙은 부모는 따로 살면서 고령화로 인한 외로움에 지쳐있다. 그나마 부부가 함께하면 낫지만 부모 중 한쪽이 사별하면 외톨이가 된다.

「스마트 폰이 울기를 / 기다리는 때가 있다 // 현관의 벨 소리가 /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 천정의 층간소음이 /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 먼 하늘에서 울려오는 우레 소리 // 우주 또한 그렇다」 서울대교수를 정년퇴임한 오세영 시인은 ‘어떤 날’이란 시를 통하여 노후의 외로움을 토해 내고 있다.
피아노 소리나 발 끄는 소리 때문에 살인이 일어나기도 세상이다 보니 건축사들은 설계를 하면서 층간소음을 어떻게 하면 줄일까 고민한다. 그런데 얼마나 외로우면 층간소음이 기다려질까. 건축사들은 아파트를 통해 똑같은 집을 양산한다. 그러나 같은 집이지만 같은 가정은 하나도 없다. 어버이날에 우리는 부모님께 카네이션과 식사와 용돈 얼마로 때운 적은 없는지? 이제는 모 대통령처럼 매일 아침을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