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정의는 무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리더의 공정한 법치우선이
융성과 발전을 가져온다


금년 3월1일 서울도심은 탄핵찬반의 극단적 태극기 물결로 뒤 덥혔지만, 98년 전에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과 태극기가 함께 하였고, 전국적으로 6월까지 지속되었다. 일제는 제암리 교회에서 30여명을 학살하는 등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구속자가 1만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포에 따라 촉발된 식민지 최초의 무저항 독립운동은 결국 수포가 되었다.
이는 파스칼이 그의 저서 명상록에서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력하고,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고 밝힌바와 같이 힘이 따르지 않은 정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힘이 없는 정의는 반항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항상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못한 힘은 공격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은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의로운 자를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를 정의롭게 만들어야 한다. (중략)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힘은 쉽게 인정을 받고 좀처럼 논란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힘은 정의에 반항하여, 정의는 부정한 것이고 자기만이 정의의 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올바른 것을 강하게 할 수가 없었고, 힘이 있는 것을 정의라고 단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올바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옳은 일이며, 가장 강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라고 정의와 힘의 관계를 설파하고 있다.

지난 총회의 감사보고는 집행부의 잘못을 많이 지적하였다. 특히 해외출장 시 출장목적과 다른 사적여행경비의 공금사용에 대하여 『아리랑TV사장이 사적인 밥값의 공금사용으로 인해 면직된 사실』을 인용하면서 부당성을 적시하였으나, 회장은 “관점이 다르다. 수고한 사람들에게 그 정도 예우는 따라야 한다”라고 답변하였고, 총회는 그대로 끝을 맺었다.
3.1운동은 당초부터 무저항 비폭력을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독립 쟁취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식민지국가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무단통치가 완화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감사는 감사의 역할만 충실하면 되는 것으로 한정하였고, 이의 가부에 대하여는 대의원 각자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신문형태의 프린트물이 무력이 될 수도 있을 터이고, 동조자들을 조직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두 사건은 ‘힘을 갖지 않은 그래서 실패를 예견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금번 감사보고서도 3.1운동처럼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법가(法家)들은 법을 통한 신상필벌로 진과 한나라의 통일제국 성립에 기여했지만, 독일의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는 “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라며 정치의 힘이 법 위에 있음을 설파하였다. 따라서 공정한 법치는 공정한 정치에서 나오며 이는 융성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고, 정치의 힘이 우선하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가나 단체나 그 책임은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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