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 문혜진
목 잘린 닭이 피를 뿜으며
뒤뚱거리고 달아나다
맨드라미 밭에 울컥 피를 쏟는다
세 발 달린 금까마귀가
피를 뚝뚝 흘리며
은하수에 그의 오랜 울혈을 풀어내고 있다

-『혜성의 냄새』중에서
문혜진 시집 / 민음사 / 2017
때로 시인들은 강한 이미지에 먼저 중독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어떤 영(靈), 혹은 혼(魂)이, 거부할 수 없이 몸에 스며드는 경우다. 그런 경우 시는 무엇에 대해 하는 얘기보다, “이게 무엇인가”하는 알 수 없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모르는 가운데서 뜬금없는 연상이 작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 시는 목 잘린 닭에서 시작해서 먼 옛날의 신화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기서 시인은 세 발 달린 까마귀의 상징이 사실은 닭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오작교를 만든 피를 마구 뒤섞는다. 그 결과 붉은 피의 강이 흐르는 검은 밤이 피어난다. 모두 생명의 원초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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