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고 있다. 이는 지난 6월 영국의 브랙시트 투표에 이어 여론조사와는 상반된 결과로 인해서다. 언론의 보도들도 마찬가지다. 클린턴 당선확률 95%라던 한 미국언론은 개표 후반부 트럼프 당선확률 95%라고 보도했다. 언론 입장에서는 굴욕적이다. 국제적인 명성의 권위지도 그랬다. 지난 총선 결과를 제대로 전망하지 못했던 국내 언론과 여론조사도 다를 바 없다. 이쯤 되면 이런 오판은 전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민심, 여론, 대중 또는 국민, 뭐라 부르든 사회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생각이나 의중이라는 게 있다. 그걸 통계적으로 정리하려는 게 여론조사이고, 그걸 묻고 물어 헤집어 보려는 게 언론 취재다. 그런데 선거 결과에서 드러나듯 언론·여론조사는 엉뚱한 결과를 내놨다. 실체와의 유리(遊離)다. 언론과 여론조사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할 때다.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얼 윌킨슨 대표는 협회 홈페이지 기고문에서 이제 주류언론은 없다고 선언했다. 다수의 새 디지털 매체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그들만의 청중들을 대변하는 시대가 됐으니, 모든 여론을 커버하려는 기존의 대형 주류매체는 힘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상황인식에 따른 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종전의 표피적인 취재나 조사로는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오해하는 잘못을 되풀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건축사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링 업계들이 저마다의 전문성을 근거로 분리 발주를 요구하고 있다. 건축사에게는 총괄 관리비용으로 설계대가의 10%를 지불하겠다고 한다. 무슨 근거로 10%라는 수치가 도출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던 마스터빌더(master builder)로서의 건축사의 이론적 지위를 근거로 분리 발주 요구를 잠재우기는 이제는 쉽지 않다. 이제는 건축물이라는 시스템의 통합관리자(system integrator)로서의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설계관리(design management)에 대한 정확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협력업체 관리비용이나 수주기회비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실천적 대안의 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다.
건축사는 건축사대로, 기술사는 기술사대로, 건설업체는 건설업체대로 저마다의 의견, 저마다의 상황을 주장하는 가운데 주류의식, 기득권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건축사 자격을 살아있는 화석(化石)이나 박제(剝製)와 같은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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