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절망과 고독의 상징이나
벽선을 그려 먹고 사는 건축사들은
출구가 있는 희망의 벽을 지향해야
그러나 출구가 보여도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존재하는 현실은 답답하다

건축설계에서 벽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벽이란 단어는 막힘과 어려움, 고독 등과 함께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
기 한다”로 시작하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
녀’를 우리는 지금도 애송한다. 그는 6.25
전쟁 후 어지러운 정치 세태를 증명하듯,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정치포스터와 격문
이 붙어있는 벽을 보고 절규하며 절망한다.

“(전략)그것은 감성도 이성도 잃은
멸망의 그림자
그것은 문명과 진화를 장해하는
사탄의 사도

나는 그것이 보기 싫다.
그것이 밤낮으로
나를 가로막기 때문에
나는 한 점의 피도 없이
말라 버리고”

“말이 씨 된다”라는 말처럼 낭만적인 박인환은 6.25전쟁 휴전 후 3년만인 1956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제 이와 달리 용서와 화해,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정호승 시인의 ‘벽’을 보러 가자.

“(전략)나는 한 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 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것이다.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자신도 괴롭기 때문이다. 정호승은 “벽을 벽이라고만 생각하면 벽이고, 벽 속에 문이 있다고 생각하면 문을 발견할 수 있다. 항상 벽은 문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란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벽은 문이 있음으로 존재한다는 건축적 사실을 그는 용서의 돌파구, 화해의 입구로 승화시킨 것이다.
벽선을 그려 먹고 사는 우리 건축사들은 당연히 절망과 고독의 벽이 아닌 희망과 용서와 화해의 출구가 있는 긍정적 벽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출구가 보여도 그를 가로막고 있는 상대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존재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