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사는 김에 하나 더 사서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그냥 주는 것도 정이요,
잘 아는 사람의 밥값을 그냥 계산하고 나오는 것 또한 정이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식당은 한산했다. 어찌하다가 때를 놓쳐 혼자 식사하게 되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누가 인사를 하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이 내 앞에 혼자 서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사람으로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조우하게 되면 인사말 외에는 딱히 할 말도 마땅치 않아 옆 테이블에 빨리 음식이 나왔으면 하는 조바심도 난다. 식사를 다 했으면 먼저 일어나라고 하기에 마침 잘 되었다싶어 일어나니 따라 나오면서 음식 값은 내가 계산할 테니 그냥 가라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 “만약에 계산을 하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까지 하여 적이 당황했다. 1년에 한 번 마주치기 힘든 사이지만 가끔 그 사람의 언행으로 볼 때 진심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그런 말까지 하며 밥값을 내겠다고 하니 좀 불편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억지로 주저앉히고 호기롭게(?) 밥값을 내고 나왔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각자 먹은 것은 각자 계산’이라는 분위가 확산되고 있다 한다. 음식 값을 서로 내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하는 광경에 익숙한 나로서는 낯선 풍경 이지만 더치페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각자 계산을 원하는 손님으로 점심시간 계산대 앞은 북새통이라 한다. 이런 가운데 계산에 힘이 부친 식당에서 ‘각자 계산 불가’라는 팻말까지 등장하게 되는 웃지 못 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그러자 손님 중에는 식당 주인의 이런 심정을 이해하여 우선 한 사람이 전부 다 내고 1/N의 값을 계좌이체 등으로 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 놓는 사람도 있다.
밥이 귀했던 어린 시절, 식사 때 사람이 찾아오면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했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밥부터 가져와 숟갈을 쥐어주고 밥 먹기를 권했다. 또 내가 밥을 더 달라고 하면 하나를 주면 정(情)이 없다고 꼭 두 주걱을 주셨고 과일을 주실 때도 한 개를 주신 적이 없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정이 있었다. 한국문화를 말할 때 ‘情’의 사회라고 할 정도로 ‘인정머리 없다’는 것은 곧 비인간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정도로 정은 인품과 윤리적인 가치로 중요시 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이 혈연, 학연, 지연 등 지나치게 끈끈한 인간관계로 발전되면 따뜻함을 떠나 배타적이 되니 情의 지나친 발현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 그 자체인 ‘情’. 하지만 한국사회는 정이 메마르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면면히 이어온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을 사는 김에 하나 더 사서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그냥 주는 것도 정이요, 잘 아는 사람의 밥값을 그냥 계산하고 나오는 것 또한 정이다.
김남조 시인의 시 「빗물 같은 情을 주리라」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시대가 변하여 음식 값을 각자 계산하는 오늘 날의 낯선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해 본다.

비는 뿌린 후에 다시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을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으로 주는
情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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