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다움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다.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마치고 “나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 승패가 바둑의 전부가 아니다.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국이 끝나고 승패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시대는 이제 인간 본질에 대해 묻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과 생명의 존엄까지도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마디씩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사고하게 만들 것이며, 인간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이끌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건축생태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인구수용을 위한 획일화된 수많은 신도시를 건설했고 그 안에서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삶을 지속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했던 인문학적 사유에 의해 건설된 도시 속에서 현재 고통 받고 있으며, 보완하고 개선하고자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역사 문화도시는 크기의 확장이 아닌 인간성에 기초한 인문학적 사유에 의한 다원주의의 복합성과 대립성이 만들어낸 도시들이다. 슬로시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가 그러하다. 900년 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역사적 흔적을 지금까지 고즈넉하게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문화가 접목된 상상과 즐거움이 가득한 도시다.
도시와 건축의 창조적 패러다임은 결코 경제성의 원칙이나 정치적 신념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폐단과 문제점을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느끼고 있으며,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라는 미명아래 사회적 책무만을 강요한다며, 사유를 잃고 현실에 머무르려고만 하는 강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가 우리를 잊었던 인문학의 역사의 길로 인도하는 시기에 도래했다고 판단해본다. 우리나라 건축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력난이 제기되었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것은 올바른 건축의 방향을 모색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문제가 가장 크다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채 현실에 급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건축의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임을 자각하고, 현상학적이고 다원적인 사유 확장을 통해,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들의 미래에 발판을 마련해 줘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였던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감성을 비합리적 사고의 방해물로 취급하기 보다는 인류에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인간 정신 활동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람은 살균된 세계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그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미생물들을 들끓게 해야만 한다. 상상력을 회복시키고, 시를 발견해야만 한다”고 했다.
우리의 도시와 건축도 살균된 인간의 사유 속에서 건설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지혜로운 방식으로 전통과 삶의 방식을 알맞게 조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적 호흡과 생명력을 갖춘 건축생태계를 구축하는 방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 시대의 건축시론으로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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