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접목이 필요한
협회의 업무
기둥을 보는 시인들의 다양한 눈
이를 통해 배우고 실행해야

 

한국에서 요즈음처럼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적은 없는 듯 싶다. 이는 인구감소에 따른 대학입학정원 축소가 근인이다. 교육부는 일정비율의 정원축소를 요구하고 졸업생의 취업률을 산정하여 이에 따른 존폐의 등급을 매긴다. 따라서 학교는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학과와 기초학문인 자연과학 학과를 폐과하거나 우선적으로 감원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석학들은 비행기 조제회사에 철학과 출신이 취업하고 IT회사에 문학 전공자가 취업하는 외국의 예를 들어가며, 기초과학의 진흥 그리고 인문학과 타 분야의 융합과 통섭 없이 선진국으로 갈 수 없음을 설파한다. 이들뿐 아니라 세계는 융합과 통섭이 21세기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흔히 인문학이라 하면 문(文), 사(史), 철(哲)을 말한다. 문학은 미래와 감성을, 철학은 현재와 이성을 그리고 사학은 과거와 기억의 분야이니 이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문장의 꽃인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우리의 건축은 어떻게 비쳐질까? 우리 건축사들이 구조적 필수로 여기는 기둥에 대하여 알아보자.
박혜숙은 “땅 속에 제 발목을 묶고 (중략) 수직의 성이 되어”라고 기둥의 본질을 읊었지만, 함민복은 ‘거미’란 시에서 “불빛 나가는 창가에 줄을 쳐 놓았다/새소리와 꽃향기를 가로막고/내집을 기둥 하나로 삼아/농부가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있다”며, 내 집을 기둥과 동일 시 한다. 그런가하면 김동환은 ‘댕기’에서 “국수당 기둥에/분홍 댕기//어느 기집애 매고 갔노(중략)산새야 너는 알지/행여 내 좋아하든 그 애 아니든”이라며 연정이 오가는 우체통으로 만들고 있다. 또 조지훈은 ‘봉황수’란 시에서 근정전을 보고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중략) 풍경소리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며 일제 하, 나라 잃은 설움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문가단체는 2000년도부터 관련단체에 임의 가입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변호사협회, 의사협회는 물론 대부분 단체들이 의무규정으로 환원 된지 오래다. 그렇기에 법무차관을 지낸 분도 재직 시 비리를 이유로 변협가입을 거부당해 변호사 개업을 못하고 있다. 이렇게 타 협회가 성취한 근본적인 문제를 건축사협회는 왜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나? 현실에 급급하여 그간 하나의 일에만 몰두한 느낌이다. 시인처럼 다각적인 시각과 사고를 통해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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