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edificio se desparece, haciendo una plaza....Enric Miralles
건물은 사라지고, 광장이 생긴다.

건축사 엔릭 미라예스(Enric Miralles)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스타일링 되지 않은 독특한 모습에 충격을 받곤 한다. 도대체 이 사람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그의 고향 바르셀로나에는 독창적인 천재 예술가들이 많았기에 일견 끄덕이게 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호안 미로(Joan Miro)와 더불어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호세 루이 서트(Josep Lluis Sert), 리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 등 독특한 건축언어를 구사하는 카탈랸(Catalan) 특유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물론 예술의 원리와 다르게 건축에 있어서는 기하학적인 반복과 변형 등 다른 논리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지만, 시대와 장소의 분위기를 저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예술에서의 초현실주의적 성향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산업화와 합리성에 대한 반발로서 집단적인 기억과 짓눌림이 몽환적인 개인의 감각에 의해 예술과 글로 재현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적인 자동기술법(Surrealist Automatism)은 이성이 지배하는 인간의 뇌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어하면서, 순간적으로 감각과 본능에 의존하여 마치 뿜어져 나오는 샘처럼 예술가의 우연적이고 불규칙적인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움직임을 동경하며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꿈과 무의식, 잠재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호안 미로의 그림들, 농장, 카탈랸 정원, 경작된 땅은 카탈루니아 지방의 풍토, 식생, 농기구 등을 보여주며 그곳의 익명적 분위기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농장>은 미로의 친구였던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의 집에 전시되어 있는데, 헤밍웨이는 “이 그림은 스페인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스페인 밖에서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스페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며, “그 누구도 이렇게 두 개의 반대되는 감정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초현실은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 Joan Miro, The Farm, 1921
▲ Alejandro de la Sota ⓒ송하엽

이런 분위기의 도시에서 자라고 배운 엔릭 미라예스는 스페인의 체념인 “Sol y Sombra” 즉, 빛과 그림자를 그의 건축적 어휘를 통해 젊은 시절부터 구현하여 왔다. 그는 대학에서 스승이었던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로부터 건축과 도시를 같이 고려하는 디자인 방법론에 대하여 배우며, 모네오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의 학장 재임 시 하버드에 미라예스를 초청하여 스튜디오 교수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와 그의 처였던 카르메 피뇨스(Carme Pinos)의 협업에서 그들의 창조는 여느 건축사와 같이 작은 디테일에서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건축의 요소들인 지붕, 보, 기둥은 그들의 디테일로 색다르게 변형되었다. 물론 그의 디자인은 예술품과 같이 말로 설명되는 곳과 설명되지 않는 곳이 있지만, 그들이 잘 배우고 구사해왔던 구법과 디테일에서 의도적인 변형을 유도하며 건물과 주변 도시에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알레잔드로 데 라소타(Alejandro De la Sota)의 타라고나 시청사의 비대칭적인 정면처럼,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독재에 대한 정신적인 반발감으로 삐딱하고 비대칭적인 건축어휘가 자연스러워졌다. 미라예스의 캐노피도 기둥과 보의 비대칭적인 배열로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Cubiertas en la Plaza Mayor ⓒ송하엽

그는 피뇨스와 결별하고 바르셀로나에서 돌아와 미국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타글리아부(Tagliabue)와 작업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피뇨스와 미라예스의 협업작품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함께 작업한 스코틀랜드 의회당(Parliament Building)은 미라예스가 초기 디자인에는 참여했지만 그의 사후에 이루어져 타글리아부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스코틀랜드는 스콘석(Stone of Scone)이라는, 왕좌 밑에 놓인 상징적인 돌이 있다. 스콘석은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에 쓰이다가 영국, 그레이트브리튼 및 잉글랜드 군주의 대관식에 쓰였던 직사각형의 붉은 빛 사암이다. 영국에서는 대관식 돌(Coronation Stone)이라고 부른다. 각기 다른 기원을 지닌 대영반도에서, 스콘석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부심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돌은 13세기 말에 잉글랜드에 빼앗겨 웨스트민스터 사원로 옮겨졌는데,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는 매우 치욕적인 일이었다. 1950년 성탄절에 애국심이 남달랐던 네 명의 스코틀랜드 학생들이 이 돌을 훔쳐서 스코틀랜드에 가져왔으나, 결국 경찰에 붙잡히고 돌은 다시 영국으로 옮겨졌다. 결국 1996년에 이 돌은 스코틀랜드에 돌아왔다. 우리가 보기엔 그저 돌덩이처럼 보이지만 ‘거침’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영반도의 문화는 세월과 무관한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에딘버러도 돌과 같은 거친 자연이 압권이다.

▲ 솔즈베리 크렉스 ⓒ송하엽

의회당은 아더왕의 의자(Arthur’s Seat)라는, 화산암이 융기한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아더왕이 앉았을지는 모르지만 아더왕의 전설 중 갑은 역시 원탁의 기사다. 원탁은 12명의 기사가 서열에 따라 앉을지라도 같은 높이 같은 거리에 있어서 동등한 발언권을 부여한다는 민주적 개념이 있다. 건축적 뉘앙스 역시 같은 지평을 맞잡고 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교실과 회사 회의실의 원탁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동등한 입장에서 발언한다는 것이다. 같은 지평은 건물의 기단부에도 적용된다. 옛 양반집처럼 높이 오르기보다 물과 눈이 차지 않는 적절한 높이에 만들어진 기단부는 서로 평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미라예스는 맞은편에 있는 전통적 정원 위에 높게 위치한 호리루드 궁전과는 정반대의 야생의 흙, 즉 근처의 솔즈베리 크랙에서 뻗어 나온 것 같은 모양의 의회당을 만들고자 했다.

▲ Arthur's Seat ⓒ송하엽

의회당 계획에서 미라예스가 중점을 둔 주제는 에딘버러의 땅에 대한 전설적, 지형학적 해석과 건물에의 민주적인 의미 부여다. 스코틀랜드는 몇 개 부족의 결합으로 만들어졌고, 목초가 흩뿌려 있고 화산암이 융기되어 있는 풍경은 나라가 만들어졌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마치 전설 같은 풍경이 의회당의 기초가 되었다.

▲ 길에서 본 스코틀랜드 의회 ⓒ송하엽
▲ 스코틀랜드 의회 ⓒ송하엽

‘내가 있기 전에 만들어진 지형과 내가 있을 때 만들어진 건물이,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기운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나는 자연과 건물 사이에서 누구인가, 이 땅은 무엇을 공유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현재에서, 현실과 초현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배반하지 않는 땅의 기운에 나를 가슴 벅차게 할 것이다. 인간사(人間事)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땅에서는 기운을 받는다. 결국 자연과 그를 닮은 건물은 시간을 응축되게 느껴지게 하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같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던져주며, 주어진 현재를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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