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군사박물관(Dresden Museum of Military History)

“죽음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제대로 죽을 수 있다.

죽음을 삶 곁으로 삶의 안쪽으로 모셔와야 한다.” <백서2> 이문재

지난 4월 16일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에겐 정신적 임계점을 넘어선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집단적인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괴롭게 한다. 20세기 초 파시즘과 나치즘에 의한 고전주의의 차용으로 전횡된 거짓 기념비성(Pseudo Monumentality)의 건축을, 20세기 근대건축에서의 극복으로 제시한 1944년의 지그프리드 기디온(Sigfried Giedion), 호세 루이 서트(Josep Lluis Sert),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가 함께 적은 ‘기념비성에 대한 9개의 쟁점(Nine Points on Monumentality)’에서 근대건축의 초기부터 다루지 못했던 공적 가치의 표상(Civic Representation)을 제시했다. 예술과 건축을 도시에서 종합하자는 것이다. 1968년 이후에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역사적 건축요소의 도입으로 과거의 것의 재현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역사에 대한 향수로만 남게 되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기념하는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의 장면을 추상화한다면 어떨까? 폭발, 폭격, 파편, 폐허, 붕괴, 어둠, 굉음 등등 전쟁이나 사고의 장면은 급작스럽게 불안한 상황을 만든다. 해체주의 전시(1988)에서 등장한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는 전쟁의 참상을 파편화된 모습으로 추상화했다. 비뚤어진 사선, 예각의 공간, 무질서한 창 등은 전쟁의 기억을 “낯익지만 낯설게(uncanny)” 보여준다. 마치 전쟁을 체험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유발하며, 잠재해 있는 전쟁의 낯익은 상황을 추상화하여 낯설게 만들어, 전쟁의 트라우마를 자기반성하며 공유하는 윤리적인 제스처를 하는 것이다.

베를린 유태인 기념관(1998)을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보면 치유적인 기여를 했으며 올바른 역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효과를 만들고 있다 할 수 있다. 리베스킨트는 건물은 ‘목소리들이 속삭이는 곳’이라 얘기하며, 잘 듣다보면 구조들이 발언을 하며 때로는 노래까지 부른다고 했다. 그만큼 건축은 무표정하면 안 되며 충분히 감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건물은 하나의 텍스트로서 의식에 의해서 또한 무의식에 의해서도 해석되어야 한다.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에서 방문자들은 걸으면서 가두어져 있고, 불안하며, 불균형적인 상황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베스킨트는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지하실에 몇 년씩 갇혀 연명하는 가족의 삶,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감, 밤에 몰래 나와서 보는 별빛 혹은 쪽창을 열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 등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생생하게 그 경험담을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의 보이드 공간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반기념비적인(Counter-Monumental) “기억의 빈 공간(Memory Void)”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벽과 빛의 공간만을 느낀다. 또한 ‘떨어진 잎(Fallen Leaves)’이란 조각은 실제로 밟고 지나가면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처절한 느낌을 준다. 빛만 있던 공간에 영혼들의 소리까지 채워 공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수직적인 형태에 반해 반기념비적인 형태는 보다 수평적이고 비형상적이어서 구체적인 희생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는다. 추상화된 공간과 형국으로 희생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기억을 감추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추상은 일반화의 오류도 있기 때문이다.

리베스킨트는 트라우마를 공유하기 위해 기념비적인(Monumental) 모습은 최대한 축소하면서 반기념비적(Counter-Monumental)인 모습은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드레스덴 군사박물관(2011년 사진1~5)은 1876년에 지어진 건물에 30m 길이의 철과 유리로 된 쐐기 모양의 구조물이 파편처럼 박혀있는 형국이다. 이 쐐기는 1945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드레스덴 시민 25,000명이 사망한 곳을 가리킨다. 독일의 전쟁에 대한 참상과 더불어 반성을 담은 것이다. 런던과 파리의 군사 박물관은 전쟁과 군인정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공간에 가깝지만 이곳은 전쟁의 고통을 증언하는 곳이다. 리베스킨트는 “나는 이 역사적인 무기고 건물을 관통하는 대담한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기서 건축은 군사력과 조직된 범죄가 독일과 이 도시의 운명과 엮여 있었음을 드러낼 것이다.”고 설명했다.

밖에서 쐐기를 보고 들어간 이상, 실내에서도 그 쐐기가 어떻게 공간화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1층에서부터 쐐기공간의 전시방식은 독특하다. 기울어진 벽과 예각의 공간을 이용하여 배치된 전시물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면 빛을 어둡게 하며 전시 캐비넷도 좁게 만들어 불안한 공간감을 만든다. 맨 위층에서 무기고 건물 밖으로 돌출된 쐐기의 끝으로 가는 길은 철골구조에 메탈 그레이팅으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여 본능적인 긴장감과 폭격지를 향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동시에 자극한다.

난징대학살기념관(신관, 2007년 사진6~7) 역시 6주 동안 30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곳을 기념하고 있다. 2차 대전 중 일본군의 복수심에 찬 이해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었다. 2007년에 건축된 이곳은 30만 명의 죽음을 강조하며, 설치작품으로 그 처절함을 더하고 있다. “12초벽”은 12초마다 한 명이 희생된 것을 12초마다 떨어지는 물방울과 어두워지는 사진으로 형상화하고, 건물의 상부와 연결된 기념광장에서는 주인 잃은 신발을 가지런히 배치해 그 슬픔을 더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죽음은 삶 곁으로 삶의 안쪽으로 모셔와야 한다.” 전범인 일본에 대해 깊은 사과가 촉구되지만 그들의 반응은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장소의 건립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 총리의 자기반성의 발언과 정반대다. 그녀는 2013년에 희생자에 대하여 영원한 죄를 짓고 있다고 사죄했다. 트라우마는 이렇게 말과 행동 그리고 공간과 장소로 공유되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 번, 앙금이 말끔히 없어질 때까지. 역사관보다 더 중요한 역사감은 낯익지만 낯설게 만들어진 공간과 장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감각으로 역사와 치유를 공유할 때 형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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