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가치관을 집에 담고 싶다면 설계에 투자하라.
마음을 투자하고, 시간을 투자하라.
집짓기를 잔치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초가집이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초가지붕을 뜯어내고 지붕을 기와로 바꿨던 날은 마치 마을 잔치 같았다. 아버지가 주축이 되어 동네 어른들과 기와를 이었고,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초가지붕에서 잡은 하얀 굼벵이를 들이대며 놀리기도 했다.

집 짓는 현장 옆은 으레 동네 아이들 놀이터였다. 동네 친구들과 마당에 쌓인 짚더미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패를 나눠 술래잡기도 했다. 그렇게 집짓기가 끝나면 마을에서는 공동으로 돼지를 잡았다. 어린 마음에 울어대는 돼지가 불쌍해 모퉁이에서 혼자 훌쩍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지만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은 본인 손으로 직접 했다. 혼자 하기 버거운 일은 이웃이 함께 거들었다. 집짓기는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잔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집짓기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로운 재료와 공법의 등장으로, 이제 전문 건축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집을 지을 수 없다. 건축 기술의 발전은 집짓기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건축주가 선택할 수 있는 건축의 폭은 넓고 다양해졌으며 질 높은 작업들도 가능해졌다. 아쉬운 부분은 마을 잔치처럼 흥겨움으로 가득했던 집짓기가 업자들과의 분쟁터로 전락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집짓기가 다시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을까. 그 해법은 바로 ‘설계’에서 찾을 수 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이다. 혼자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것이 가능했던 집짓기가 건축주, 건축사, 시공자로 분업되니 서로 내 맘 같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주위에서 좋은 업체라 소개를 받고 집짓기에 대해 대화도 잘 통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주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설계이다. 설계를 제대로 하는 일은 행복한 집짓기를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시공자는 내 마음이 제대로 표현된 설계도서대로만 집을 지어주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건축주가 설계의 중요성은 간과한 채 시공사를 먼저 찾아가 집짓기를 의논한다. 마치 연주자를 찾아가 작곡을 해달라는 것과 같다.

집을 짓는 것과 집을 설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설계는 공간에 삶을 담는 작업이고, 집에 대한 건축주의 마음을 설계도서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투입된다. 이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건축주가 설계를 불필요한 절차라 여기며 설계비를 아까워한다.

그 결과 건축사들은 턱없이 낮은 설계비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지 못하고, 결국 설계도는 몇 평에 방 몇 개라는 건축주의 최소 주문대로 급조된다. 설계는 실종되고 인허가만 남는 것이다.

집짓기는 나와 가족의 세계와 우주를 구축하는 일이다. 가족의 가치관을 집에 담고 싶다면 설계에 투자하라. 마음을 투자하고, 시간을 투자하라. 집짓기를 잔치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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