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에 의한 선행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 타인을 도와줄 때
그 행동은 빛이 나는 것이다.
또한 기부를 받는 측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누구나 다 알만한, 인구가 천만이 넘는다는 지방자치 단체에서 그 도시의 후미진 동네에 있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주거개선에 대한 용역을 의뢰 받은 적이 있다. 용역이라기보다는 거의 봉사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이었고 나의 직능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로 일을 승낙했다.

몇 달에 걸쳐 현장을 실사하고 실측도면을 그리고 개선안을 설계하고 협력업체와 협의하고 공사일정을 조율하는 등 꽤 많은 일들을 진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을 담당하고 있던 발주처 측 담당자가 내부적으로 이 일을 재능기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했다. 의견을 묻는 것도 아닌 일방적인 통보가 불쾌했지만 그 동안 해왔던 작업이 중단되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그 일 자체가 워낙 의미 있는 사안인지라 그냥 진행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대신 우리는 재능기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일에 관련된 협력업체까지 재능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으니 절충해서 반 정도의 재능기부는 하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발주처 측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전체를 재능기부 할 업체를 찾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일하는 것도 나쁜 선례가 될 것 같아 그 일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어떤 경로를 통해 다른 설계자가 재능기부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하게 들었다.

언젠가 타인을 위해 기부를 한다거나 도움을 주는 등의 선한 행동을 할 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호르몬이 몸에서 분비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호르몬은 몸과 마음을 무척 건강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물론 그 말에 과학적인 근거가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위를 떠나 착한 일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가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 되고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기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타적 행동이 건강과 행복을 불러온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사실 무척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남을 위한 선행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하며 세상에 온기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도 인간이 존재하며 역사를 이어나간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한다. 그러나 그런 기부와 봉사에 반드시 전제되어야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자발성’일 것이다. 강요에 의한 선행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 타인을 도와줄 때 그 행동은 빛이 나는 것이다. 또한 기부를 받는 측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발주처에서 내게 요구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재능기부라 볼 수 없었다.

그 지자체는 이후에도 많은 건축사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재능기부를 받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예산을 아끼고 살림을 잘 했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심심치 않게 그에 대한 불평이 들려온다. 물론 대의를 위해서 혹은 사회정의와 복지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재능기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예산을 집행하는 거대 지방자치단체에서, 강물 위에 아무도 쓰지 않는 오리알 세 개를 띄워놓거나 몇 백 년 된 유적을 다른 자리로 무리하게 옮기면서까지 정체가 모호한 거대한 알루미늄 덩어리를 만드는 일에는 몇 천 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정작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지원해야 하는 예술가들에게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어이없는 ‘재능 갈취’, 혹은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선도적인 지방자치단체에서 그런 일에 앞장설 때 예산이 부족한 다른 지역에도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포장된 강요된 선행은 사회는 밝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둡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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