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 전경 ⓒ송하엽

우리는 유럽의 도시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며, 유럽의 도시들도 많은 건축유산을 잃었고 전후 복원하여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은 우리의 도시보다 보행 친화적이며, 공공공간이 많아 보이고, 건물이 수려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들도 도시에 럭셔리 쇼핑가와 은행가 등등이 즐비하고 공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단조로운 풍경도 지니고 있다. 여행객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좀 성급한 소개지만 겹겹의 색과 빛을 지닌 상감청자의 형국을 도시에 적용하여 상감보이드(象嵌 VOID) 공간을 상상해 본다. 상감이란 ‘여러 번 새긴다’는 뜻으로 다양한 그림이 표면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이를 도시에 적용하면 다양한 건축표면에 의해 도시공간이 여러 시간의 겹으로 싸인다는 것이다. 특별한 날을 위한 럭셔리 쇼핑가, 눈에 안 띄는 가게,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 공공미술품, 그곳에서 각자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보이는 풍경은 상감보이드 공간을 채우는 디테일들일 것이다. 겹겹의 건물과 그 사용, 그리고 움직임이 보이는 무심한 듯 어우러진 도시풍경은 마치 상감청자와 같을 것이다.

건축사 볼레스와 윌슨(Bolles&Wilson)은 유럽에서 상감풍경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유럽 도시들의 역사주의적 태도, 즉 도시의 공공성보다는 역사적인 건축형태의 차용, 또한 이런 건물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입점해 있는 럭셔리 쇼핑가 등을 비판하며, 보다 건강한 역사도시의 보존과 지속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독일 뮌스터는 바로크시대에서의 거리의 변화와 2차대전 이후 근대화에 의해 1100년 경 도시 중심에 세워진 람버티 교회로의 방향성이 많이 흩트려졌으며, 동시에 상업화가 진행되어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진정한 역사성은 사라졌다. 마치 박제된 도시처럼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윌슨은 “뮌스터와 같은 도시의 중심지역은 역사와 럭셔리 쇼핑가로 꾸며진 테마파크와 같다. 우리는 도서관을 도시의 공공영역을 되찾을 수 있는 구명보트처럼 지을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는 뮌스터의 대안을 아이러니하게도 동경에서 찾았다. 그리고 동경에 대하여 “동경은 서양도시보다 진보적이다. 도시의 중심도 없고, 끊임없는 카펫처럼 밀집하고 빈 상태가 결합되어 있다. 동경은 복잡한 정보와 행동양식의 변종이 무한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했다.

윌슨은 동경에서 작은 건축이나 오브제가 익명적 도시공간에서 공공적 삶을 고양시키는 광경을 많이 보았으며, 또한 복잡한 전철 안에서도 헤드폰을 끼고 책을 보며 본인만의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본인의 적응력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볼레스와 윌슨의 일본에서의 경험은 뮌스터 도서관에서 도시의 역사와 형태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윌슨은 뮌스터의 기존 노천주차장 등 도시공간이 2차대전 이후 도시재건에서 실패한 공간으로 여겼다. 이러한 도시공간이 기존 역사의 맥락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 도서관 내부 모습 ⓒ송하엽

뮌스터는 교회도시로서 793년에 세워진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뮌스터’라고 불렸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재세례파(Anabaptism)에 의해 점령되었는데, 그들은 기존 교의를 따르지 않고 비형식을 주장하였고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꿈꾸었다. 1535년에 독일의 군주들과 콜론의 주교가 일으킨 군대가 뮌스터를 수복하면서 재세례파의 수장 3명을 람버티 교회의 종탑 철창에 매달아 처형하였다. 이 사건 이후 재세례파는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도 배척되었다. 현재 람버티 교회의 종탑에는 3개의 철창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교회의 힘을 보여주는가 하면, 남아있는 재세례파에겐 기념의 장소가 된다.

볼레스와 윌슨은 람버티 교회의 앱스(Apse)를 바라보는 쪽에 시립도서관의 계획안을 제시하면서 가장 중요한 설계개념으로 두 매스를 분리해 가운데에 길과 같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이 빈 공간은 ‘책의 길’이라 불리며, 교회를 향하여 있다. 책의 길은 건물의 양 끝에 테라스 공공장소를 만들었다. 길에 면한 ‘책의 빌딩’은 전통적인 도서관 프로그램을 지니고, ‘정보 빌딩’은 도서관의 주출입구와 주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책의 길’은 양쪽에 두 매스를 끼고 람버티 교회를 향하고 있는 형국이 압권이다. 또 두 건물의 볼륨 차이와 높이차에 의하여 형성된, ‘책의 길’에서 교회를 향해 적절히 풍화된 구리로 된 지붕벽은 비대칭적인 모양을 가지고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책의 길’ 동쪽 입구에 있는 조각 Die überfrau는 ‘톰 오터니스(Tom Otterness)’라는 조각가가 만들었으며, 그 의미는 작은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재정의 되는 ‘사회의 변화를 은유한 것’이라 했다. 또한 작가의 여러 은유도 특이하다. 미국작가인 그는 왼손을 든 부처의 이미지, 역시 왼손을 든 자유의 여신상의 골조 이미지 등을 참조하며 평소에 그가 만든 작은 인물 조각상들과 더불어 8m 높이의 속이 빈 사람형상의 조각을 설치했다. 이는 도서관 사이의 거리에서 걷게 되는 우리자신의 모습이며, 작은 조각과 더불어 사회를 만들어가는 작은 상들의 해학적인 모습 또한 역사적인 조각상에 대한 오마주 등을 표현하고 있다.

책의 길은 단순히 비어 있는 길이 아니라 작은 인형들, 조각, 브리지, 구리 지붕, 테라스, 람버티교회의 앱스가 상감보이드 공간으로 구성되어 뮌스터의 과거를 보게 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상감풍경을 만들어낸다.

▲ 두 건축물 사이 ‘책의길’ ⓒ송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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