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에 가담한 건축사는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되
한 명의 억울한 건축사도 있어서는 안 될 것

 

1980년대 대한민국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그들이 거주할 주택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서울의 인구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서울 내에서도 목동 신시가지나 상계동 지역을 개발하는 등 주택 건설에 들어갔으나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주택 부족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었다. 이에 1988년 9월 13일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산본․평촌 등에 대규모 택지개발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집값은 안정되지 않았다. 이에 1989년 4월 27일 2차로 주택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것이 일산과 분당신도시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총체적 건설능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민1인당 시멘트소비량 등 당시의 각종 지표는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지금도 건설업계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당시 분당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던 선배가 하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TV에서 건설현장 사고소식만 들리면 가슴이 철렁하다. 내가 시공했던 아파트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갈 수만 있으면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바다모래와 중국산 시멘트로 대표되는 부실자재 사용과 무리한 공기단축의 결과 현장소장조차도 품질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었으니 이제 그 선배는 불면의 밤이 끝났을까? 건설산업기본법 상의 하자담보책임기간이 공종별로 최장 10년이니 법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건축설계․감리업계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행법상 건축법에 의한 감리는 법적으로 설계자와 감리자가 분리되어있지 않아 설계자가 감리업무를 겸하고 있다. 사용검사는 설계․감리자가 아닌 다른 건축사가 수행하고 있다. 이는 본인이 설계하고 감리한 건축물을 본인이 검사하여야하는 불합리성을 배제하고 사용검사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건축에서의 ‘사용검사’라 함은 허가된 대로 적법하게 시공되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검사하는 과정으로서 그에 따른 의무와 권한은 원칙적으로 허가권자에게 있으나 건축법에 의하여 위임받은 건축사가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사용검사업무대행자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행할 의무를 지니며, 사용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은 공무원과 동일한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감리자 및 사용검사 업무대행건축사는 민․형사상의 책임은 물론 건축사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받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건축사법 상의 건축사행정처분을 함에 있어 몇 가지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첫째, 본인의 의지나 관리영역 밖에서 이루어진 사항에 관한 행정처분의 가능성이다. 처벌이란 본인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잘못에 관하여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용검사를 필한 건축물의 관리와 불법적인 개조 등은 건축사의 손을 떠난 것으로서 건축사가 관리․감독할 의무나 권한이 없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시효도 없이 처분이 가능하던 건축사의 행정처분에 관한 건축사법이 2011년 개정됨으로써 처벌에 관한 시효가 3년으로 한정되었다하나 건축물 불법개조나 증축 등이 사용검사 후 2∼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용검사 후 3년이란 기간 동안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한 처분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불법개조나 증축 등으로 인한 행정처분으로부터 감리자와 사용검사업무대행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 징계권자가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가 그 당시에 불법이 아니었음을 입증하여야 하는 불합리성이다. 현재의 법체계는 검사가 피의자의 유죄를 증거로써 입증하여야 하며 증거에 의하지 않은 모든 가설이나 예단은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건축사의 행정처분은 그렇지 않다. 건축사의 잘못을 전제로 하고 당해 건축사가 사진 등의 증거로서 잘못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현행의 감리제도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건축주와 감리자 사이에 절대적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감리업무의 독립성,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점의 보완 없이 감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한 제도의 희생자를 양산할 소지가 있다.

넷째, 불법이나 위법 행위의 주체는 건축주임에도 원상복구만 이루어지면 종결처리하고 있는 현행의 제도 하에서는 어느 건축주도 불법이나 편법 등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전라남도는 개업건축사 290명 중 71명이 최소 45일부터 최장 12개월까지 업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시정명령을 받은 29명을 포함하면 관내 건축사의 3분의 1이 넘는 100명이 행정처분을 받은 셈이다. 다세대, 다가구주택 등에서 불법대수선과 용도 변경으로 가구 수를 늘린 경우가 127건, 무허가 증축에 따른 일조권 및 건폐율, 용적률 위반이 133건, 부설주차장 및 조경시설 무단훼손 106건 등이다.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축사 37명이 대부분 사용검사를 하였던 건축사다. 이미 완성된 건축물의 사용검사만 하였던 건축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물론 감리업무와 사용검사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아 불법․편법을 조장한 건축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건축사를 불법의 주역인양 매도하여서는 곤란하다. 불법에 가담한 건축사는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되 한명의 억울한 건축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 전라남도 건축사의 무더기 징계 사태를 계기로 건축사행정처분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감리제도 및 사용검사업무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감리제도 개선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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