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에미상 예술 프로그램 부문 대상 수상
우리는 <안녕?! 오케스트라>를 ‘기적의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절정은 맨해튼에서 일어났지만 더 큰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적’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때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

레드카펫, 이브닝드레스, 수 십 개의 카메라 플래시, 세계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 이 단어들이 연상시키는 것은 세계적인 스타, 화려한 여배우, 저명한 인사들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고, 공상이 취미였고, TV 화면을 통해 칸 영화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의 근사한 레드카펫을 보며 동경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고 남들이 놀랄 만큼 엉뚱한 생각을 하는 나일지라도 감히 레드카펫 위에 서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사리분별력은 있었다.
2013년 11월 25일. 맨해튼 한 복판 힐튼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는 최고 티켓 가격이 5,000달러(한국 돈 500만원)에 달하는 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제41회 국제 에미상(The International Emmy Awards) 시상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영국의 유명한 여배우가 시상자로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때 나는 가장 싼 티켓(가장 싼 것도 500불, 50만원이다!)을 사서 조명도 없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차마 등과 가슴이 푹 파인 이브닝드레스는 입지 못하고 얌전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담담하게 앉아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리처드 용재오닐과 희미한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 엄청난 글래머에 눈부시게 빛나는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에는 ‘Arts Programming(예술 프로그램 분야)’의 수상작 이름이 들어 있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봉투를 개봉했고, “Oh~~”하는 작은 감탄사와 함께 수상작품의 이름을 말했다. “Winner is <Hello?! Orchestra>!!” 놀랍게도 그 기적의 순간, 그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가는 5분 동안 내 인생 최고의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어린 소녀의 꿈이 이루어졌다.
<안녕?! 오케스트라>는 2011년 11월에 기획되어, 2012년 9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총 4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작품이다. 나는 전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총괄 프로듀서였다. 국제에미상은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총 8개 분야에서 수상작품을 뽑는, 방송분야에서는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이다. 대륙별 예선과 준결선, 결선을 거쳐 최종 후보에 네 작품이 오르고, 그 중 한 작품이 최종 수상자가 된다. 대한민국 작품이 지난 40년간 에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겨우 대여섯 차례에 불과했고, <안녕?! 오케스트라>가 국제 에미상 예술 프로그램 분야에서 한국 최초로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이 클래식 악기라고는 만져본 적도 없는 다문화 가정 출신의 아이들 24명과 만나서 음악으로 서로 교감하고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며 성장해가는 1년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과 용재오닐의 깊은 상처는 치유되었고, 아이들은 밝은 웃음과 자존감을 되찾았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큰 감동을 받고 아이들을 위해 악기를 기증하고, 누군가는 콘서트 비용이나 재능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기적의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기적의 최고 절정은 바로 그날 뉴욕 맨해튼에서 일어났지만 더 큰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송 이후, 동명의 책이 출판되어 인세 전액은 아이들을 위해 기부되고 있으며, 극장용 영화로도 제작되어 지난 연말까지 상영됐다. 또한 아이들은 안산문화재단 소속 정식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자신의 악기로 자신의 삶과 희망과 꿈을 계속 연주하고 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방송의 선한 영향력을 체험했으며, ‘기적’은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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