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신종 플루의 출현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공항에서는 모든 여행객의 체온을 카메라로 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실시간으로 환자수를 집계하여 위험경보 단계를 조절하고 의심환자가 나오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격리수용하여 치료를 한다.

학생들의 작품전시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모두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탄생한 자하 하디드 바이러스에 심하게 걸려있었다. 모든 건축물이 화려하게 채색된 희잡을 덮어 쓰고 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감기환자가 그러하듯이 스스로는 언제부터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는지를 모르고 그저 고통스러운 몸살을 겪게 된다.

한국의 건축이 신종 플루에 감염되어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다.
자하 하디드의 해체주의 건축이 추구하는 바와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의 물성(物性)이 어떠하며 이를 이용하여 단순히 새로운 형태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미래환경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그녀의 고민을 들어보지도 않고 겉모양만 그림 그리듯이 따라 그리고 있다. 가히 디자인의 변종 플루라 할 만 하다. 즉, 예방접종도 하지 못하고 대책도 없이 번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한다.

언제인가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닭처럼 이 시대의 건축물이 치료불가능 판정을 받고 대량으로 살(殺)처분 당하는 신세가 될 처지에 놓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재개발로 대량 살상되고 있는 건축물과 도시가 일상화 되어 있는 한국에서 건축을 살 처분할 또 다른 명분을 건축가들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각 증세도 없이 바이러스에 걸려서 말이다.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성 작가세계에도 변종바이러스가 널리 번져있다. 설계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의라는 건강 검진을 받으러 오는 일상적인 건축물들도 화려하다 못해 요란해 보이는 보자기를 덮어 쓴 것처럼 내용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난다. 그러니 건강 검진을 받으러온 건축물이 때로는 심사자라는 무면허의사에게 이것저것 급하게 짜깁기되어 덕지덕지 성형수술을 받고 병원을 나서는 격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탄생한 건축물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건축가들 스스로의 일상적인 삶의 슬픈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건축의 내용은 사라지고 유혹하는 껍질만 현란하게 분칠되어가고 있다. ‘마음을 사로잡는 건축이 사라지고 눈길 끌기만을 노리는 디자인’이 이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자리 매김을 한지가 이미 오래된 미래 이야기로 굳어져 버렸다. 이러한 신종 또는 변종바이러스가 지구촌에 대유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세기에 유럽에서도 건축재료 중에 가장 강하면서도 가장 유연한 철의 등장과 산업혁명이라는 후폭풍으로 철과 유리를 이용한 기술에 감염된 건축가들이 그 시대까지 이어져 오던 양식주의 건축의 전통을 버리고 네오 르네상스와 네오 고딕양식으로 뒤 엉킨 건물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설계에 맞는 재료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인 철과 유리에 맞추어 설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유럽이 신종 바이러스 독감에 모두 몸살을 앓고 있을 때에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나 구스타프 에펠(Gustav Eifel)과 같은 건강한 건축가들도 있었다. 시대의 유행에 감염되어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건축을 구축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역사에서 잊혀 지지 않는 위대한 건축가로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신종 플루인 자하 하디드 바이러스와 그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살을 알고 있는 한국건축가들을 구제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도 없지만 환자 스스로도 이 유행병에서 깨어나고 싶은 의지와 욕망을 보이지 않고 있어 그 암울함이 장마전선의 먹구름만큼이나 두꺼워 보인다.

장마가 지나고 열병에서 깨어나면 희망으로 가득한 청명한 푸른 하늘이 한없이 높은 화려한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붙들고 약 없이도 신종 바이러스를 이겨내기만을 희망해 본다. 된장과 김치로 단련된 한국인이어서 바이러스도 피해간다는 처방에 희망을 가져본다.
눈을 사로잡는 건축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건축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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