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를 전공한 학생들을 배출하는 학교에선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졸업생이 갈 곳이 없다. 건설경기의 부진이 그 원인이 되겠지만, 지금의 건축설계시장을 둘러보면 어떤 대안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중대형 건축사사무소는 그나마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에 비하면 아직은 견딜만 하다 하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설계시장이 축소되다 보니 소규모 현상에까지 중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여 경쟁하는 아비규환의 시대가 도래 한 것 같다. 작금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유지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미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거나 폐업을 고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그처럼 심각한 수준이다.

설계분야가 줄었다면 시공이나 감리분야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금년에 졸업할 학생들의 진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 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 개발호황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공급의 시대에서 관리의 시대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한다.

중소형 건축물 시장의 현실을 살펴보자. 과연 제대로 된 설계를 하고 있는가? 공공발주 건축물을 보면 기본설계도서는 물론이고 시공도서와 내역서, 공사시방서까지 작성되는 반면, 민간 건축물은 달랑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기본도서만 작성되고 있다.

공공발주 유치원의 설계비와 민간발주 유치원의 설계비를 비교해보면 1/4~1/5 수준밖에 안 된다. 시공도서와 내역서, 공사시방서를 작성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어떻게 시공도서와 내역서, 공사시방서 없이도 건축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사 감리자 또한 무엇을 가지고 감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면적 늘리고 위치 옮기고 높이 변경하는 것을 체크하는 일이 공사감리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한다면, 철근 배근과 콘크리트 타설, 목재 품질과 페인트 칠 마감확인을 무엇을 가지고, 어떤 도서를 보고 감리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지금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비를 덤핑할 수 있고, 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공사 감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불법 부실시공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고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좋은 건축물 건축을 위한 반성과 다짐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설계를 해야 하고, 공사감리 또한 제대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금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 인력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설계와 감리를 위한 인력 보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설계비와 공사감리비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설계비와 공사감리비의 현실화가 시급한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누워서 침 뱉는 격인 것 같아 부끄럽다.

지금이라도 선배인 우리들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후학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어쩌면 건축학과가 폐과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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