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法住寺)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속리산은 해발 1,50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이라고 불렸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 8경 중의 하나로 제2 금강 또는 소금강으로도 불리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경치가 뛰어나며 기암, 기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법주사 대웅보전과 주변 문화재 (사진=김진섭 건축사)
법주사 대웅보전과 주변 문화재 (사진=김진섭 건축사)

공민왕과 세조도 찾은 명찰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하였다. 의신조사가 천축(天竺, 印度)에 갔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나귀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뛰어난 고승들이 차례로 법주사에 주석하며 수차례에 걸쳐 중창이 이루어졌다.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공민왕이 직접 법주사에 와서 양산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도 법주사에 들러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대사를 도와 절을 크게 중창했다. 조선 중기에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와 벽암각성 스님이 팔상전 등 전각을 중건했다.

팔상전 전경	(사진=김진섭 건축사)
팔상전 전경 (사진=김진섭 건축사)

기나긴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의 보고
법주사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고식(古式)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만 3점이고, 보물은 13점, 충북 유형문화재가 20점, 문화재자료 1점 등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자체가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천연기념물도 2점이 있다.

다양한 문화유산 가운데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 수많은 탑 가운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목탑으로 국보 제55호이다. 쌍봉사 대웅전과 두 기였지만 1984년에 쌍봉사 대웅전이 불타는 바람에, 목탑으로서는 유일한 지정문화재가 되었다. ‘팔상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8층 목탑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5층이다.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에서 중요한 8가지를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어서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팔상전 옆 사방이 트인 전각 안에 모셔진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도 법주사에만 있는 보살상이다.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할 것을 서원한 보살이 희견보살로 뜨거운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절에 있는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목조 5층 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하여 동쪽 암벽에 새긴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및 절 어귀의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은 신라시대의 우수한 작품들이다. 또 경내에는 고려 충숙왕 1년(1341)에 세운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를 비롯한 수십 개의 비와 부도(浮屠)가 있고, 높이 27m인 동양 최대의 거불이 1964년 6월에 점안식을 했다. 법주사 일원의 속리산은 대한민국의 명승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주소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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