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묻는다

- 이영유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 바다를

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

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

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

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

소리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일 때쯤

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

나는 나를 묻는다

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

올라온다

 

- 이영유 시집 ‘나는 나를 묻는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2007년

간암으로 투병 중인 시인의 집에 찾아 갔을 때, 그는 복어알로 치료하고 있었다. 연극인이었고, 출판기획자였고, 시인이었던 그는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이 시집이 나오는 걸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삶은 풍성했지만 화려하지 않았고, 누추했지만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시냇물에게, 나뭇잎에게로 돌아갔다. 문단에서 뿐만 아니라, 건축판에서도 늘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故 이일훈 후리건축연구소 대표, 건축 칼럼니스트 전진삼, 이용범과 친하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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