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철 건축사(사진=조명철 건축사)
조명철 건축사(사진=조명철 건축사)

며칠 전 몰상식한 문의 전화가 왔다. “땅을 사려고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4층까지밖에 못 올리는 곳이라고 하는데 건축사님이 5층까지 가능한지 잘 검토해 주시면 그 땅을 사려고 하니 좀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 의뢰해 보았다는 사정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남이 침 바른 일을 살펴보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필자는 건축주가 구태여 말한 것으로 마음이 까칠해졌다.

이러한 문의가 적지 않음은 필자만의 사정은 아닐 게다. “1층에서 이 정도 면적은 꼭 나와야 해요”라고 하는데 건폐율을 넘어설 수는 없다. “용도변경해서 이러한 용도로 꼭 바뀌어야 해요”라고 하는데 지구단위계획에서는 어째서 건축주가 원하는 그 용도만 불가(不可)로 명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건축사가 실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제시해야 한다. 답이 틀려서는 안 된다. ‘틀리지 못할 답’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아니다. 우리의 능력을 그리 믿어주는 것은 과분한 처사이니 감사라도 해야겠다.

다행히도 공학 기술면에서 ‘틀리지 못할 답’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득도 쉽다. 대부분 법적인 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생각해 본다. 공학적 기술로 법적 장애물을 훨훨 날아 넘을 수는 없을까? 1296년 착공된 피렌체[Firenze; 플로렌스(Florence; 피렌체의 영어 이름)]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건축책임자들의 중도 사망, 대기근, 흑사병, 대공황 등의 곡절(曲折)을 겪으면서 공사중단을 반복했다. 긴 세월 동안 건축되어 오다가 공학적 기술의 한계로 거대한 돔 천장을 올릴 방법을 찾지 못하며 머리가 없는 상태로 또다시 중단되었다. 유럽 각지에서 건축전문가들이 와서 해결해 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1418년 성당 건축 사업단은 돔에 대한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팔각형 돔의 내부에서 버팀대가 보이기 않게 하라는 답이 요구됐다. ‘틀리지 못할 답’이었다. 12명이 공모에 응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lipo Brunelleschi; 1377~1446)가 당선되었다. 투시 원근법과 소실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했다는 그 브루넬레스키, 맞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작은 아치를 세운다 해도 목조 아치틀이 필요했는데 그는 목조틀 없이 돔을 세우겠다 했으니 건축주가 원하는 ‘틀리지 못할 답’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에 급격한 목재 가격 인상으로 목조틀 제작·설치비용이 매우 높았던 현실도 작용했다.

오늘도 해법을 찾아 고생하고 있는 건축사의 고달픈 삶을 생각하다가 건축주가 원하는 답에 경제성까지 얹어주었던 브루넬레스키 일화를 통해 통쾌함을 맛본다. 대리만족이고 ‘나는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심리’이리라. 아무렴 어떠랴. 몰상식한 문의에 단련될 즈음, 나도 일생에 한 번 ‘틀리지 못할 답’을 세상에 던질 멋진 날을 꿈꾸어 본다. 


     
참고자료: 1. 「브루넬레스키의 돔」로스 킹 저, 김지윤 역/ 2.「서양건축사」비난트 클라센 저 / 3.「서양건축이야기」빌 리제베로 저, 오덕성 역 /  4. 마춘경 기고 글「브루넬레스키의 달걀」대한건축학회 건축 전문잡지 건축 제17권 제5호, 19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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