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본지 前 편집국장)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본지 前 편집국장)

현업 건축사로 지난 6년간 대한건축사협회 신문과 월간지를 담당하다 보니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됐다. 당대의 문제도 있지만 보다 거시적인 방향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땅히 우리 건축사 입장에서 출발한 발상이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국내 건축,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곤 했다. 다양한 건축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 환원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처럼 선시공 후분양에 주목해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선시공 방식은 개별 건축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고, 대단지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위기 시 한국형 PF 부실을 방지할 수 있는 개념이다. 경기 따라 미분양으로 출렁이는 부동산 문제는 경제 위기의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한국만 겪는 부동산 PF 이슈이다. 부실공사로 인한 건축사 감리 책임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감리 책임이 화두가 됐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한국형 제도의 모순과 문제점에 기인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 보니 개선을 위한 시급한 몇 가지 키워드가 제시됐다. 지금 생각으로는 다음의 항목들이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정부가 어떤 벌칙과 규정을 만들어내더라도, 시공현장의 많은 문제들이 현재와 별반 차이 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1. ‘건물별 책임 건축사 제도 도입’. 의아한 표현이지만 해외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시공되는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제도다. 현행 법적 체계에서 한 명의 건축사 책임으로 수만 채의 아파트가 건축될 수 있다. 건축사가 건축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은 전 세계가 동일하지만, 대단지 공동주택처럼 책임의 범위를 파악하기 힘든 건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모든 건축의 설계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건물당 한 명의 건축사로 분리되어, 의사의 책임 진료처럼 건물 하나당 책임 건축사로 기능해야 한다. 인천 아파트 단지 붕괴사고의 경우도 정확히는 해당 업무를 진행한 개인 책임을 연대책임으로 법인까지 영업정지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의사가 진료 과실이 있다고 종합병원이 문 닫지는 않는 것처럼 건축사 관련 처벌 및 징계 내용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2. 건축사법상 특수 법인 관련 법 제정도 필요하다. 건물별 책임 건축사 제도의 도입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 건축사법에 따른 독립된 법인체제가 필요하다. 현재 변호사나 의사, 회계사 등은 각각의 독립된 특수 법인으로 상법과 분리되어 있다. 이에 반해 건축사는 일반 기업과 동일한 체제로 법인과 개인사업자로 구성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업의 특수성과 책임 등 전문적 업무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건축사법에 관련 조직 법을 따로 규정해 독립적 법인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3. ‘건축 감리의 법적 내용 구분과 책임 규정’. 각종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로 강화된 처벌 규정은 거의 살인죄에 해당할 만큼 과도하다. 이를 바라보는 많은 건축사들은 그럼에도 사고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처벌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책임의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감리 관련 법에는 품질, 안전, 구조, 공사비 등이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감독이나 검수까지 모호하게 포함시키고 있다. 때문에 법적 소송으로 들어가면 매우 모호해진다. 감리 규정의 모든 항목을 반드시 분리해야 하며, 감독과 검수 역시 분리해야 한다.

4. ‘설계 건축사의 역할 강화’. 건축사 업무 중 건축 디자인을 포괄하는 업무를 분리하고 설계의도 구현과 감리는 공공과 민간 모두 강화해야 한다. 현재 OECD 어느 나라도 설계자를 건설과정에 배제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만 현실적으로 원 건축사가 준공과정에 배제되어 본인의 디자인 실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설계의도 구현 역시 형편없는 대가로 참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참여 형식의 실질적 착취구조다. 따라서 설계한 건축사의 건축디자인 완성도에 강력한 개입과 대가가 확정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프리츠커 상은커녕 한국 건축의 퇴행만이 예정돼 있다.

5. 마지막으로 모든 건축 공사에서 시공자의 상세시공도면 작성 의무화다. 현재는 5,000㎡ 이상의 건축공사만 시공자가 감리자로부터 상세시공도면 작성 요청을 받으면, 상세시공도면을 작성하게 돼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시공자가 상세시공도면을 작성하고 설계 건축사의 검증을 받도록 되어 있다. 두바이의 루브르 박물관은 현대건설이 BIM 설계팀을 운영하면서 상세시공도면을 작성해서 프랑스 건축사인 쟝누벨의 검수 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바이나 싱가포르의 프리츠커 상 수상 건축사들의 작품을 건설한 국내외 시공사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글로벌 수준을 확보했다. 국내 중소 시공사들도 공사 중 상세시공도면 작성을 의무화해서 실력과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일본 건축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이런 시공용 도면 해석과 작성 능력 배양이 존재한다. 사실 건축설계는 일종의 표본부위를 도면화 해서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공상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시공사의 해석능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공사규모와 상관없이 시공자의 상세시공도면 의무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설계 건축사의 승인과정을 통해 시공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몇 가지 내용들이 반영될 때 우리나라 건축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세계적 건축수준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K-건축의 발전은 절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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