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종 건축사‧와이 건축사사무소
여형종 건축사‧와이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의무가입의 시대가 시작됐다. 의무가입 시행 이후 나와 입장이 비슷한 주변 건축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법제화가 됐으니 어쩔 수 없이 가입했다는 말을 듣기 일쑤다. 협회에서 나름 비전을 세우고 열심히 홍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조차도 의무가입으로 인해 좋아지는 면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는 건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변화가 생기기야 할 테지만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고 보는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건축사협회는 법률상담, 자문, 분쟁 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사 업무를 지원한다. 하지만 협회를 통해 이러저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까지도 잘 알지 못했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을 때도, 협회에 가입했을 때도, 협회가 어떤 역할을 하고 건축사 업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지 못했다. 또 협회 활동에 내가 참여해도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개인적 무관심도 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협회 측으로부터 이렇다 할 안내를 받은 기억도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아플 때 의사를 찾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변호사를, 부동산하면 공인중개사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집에 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건축사를 떠올릴까? 이 문제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엄청난 일이지만 이는 앞으로 건축사협회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필수 과제라 생각한다.

건축사협회라면 궁극적으로 건축사들을 한데 모아주는 창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협회가 건축사의 개별적 업무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협회의 역할이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협회가 건축사의 창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협회가 건축사와 건축주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주면 어떨까 싶었다. 건축사는 건축주와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 건축주도 좋은 건 축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 실력 있는 건축사가 누구인지, 속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쉽사리 만날 수가 없다. 여기에 건축사협회가 연결 고리가 된다면 건축주는 신뢰할 수 있는 건축사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설계품질을 보장받고, 이에 걸맞은 가격까지 알 수 있도록 한다면 건축사를 만나고 싶은 건축주는 당연 협회를 찾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건축사도 협회로 모여들 것이다. 물론 금전적 이익과 연결될 수 있으니 누구나 납득할 만큼 투명한 정화기능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건축과 관련된 궁금증은 누구든지 건축사협회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절차와 세부사항에 대한 컨설팅이나, 단열 및 방수 등 디테일에 관한 설계기준, 주로 생기는 하자의 종류와 처리 방법 등 건축주뿐 만 아니라 실무를 하는 건축사와 시공 현장에서도 필요로 하는 유익한 정보를 협회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건축 관련 정보를 협회를 통해 얻을 수 있으니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이 모이고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건축사협회는 수십 년간 쌓아온 건축에 대한 노하우와 실력 있는 건축사들의 지성이 모여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건축적인 조직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설계 관련 경력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계승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협회에서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모아 한국의 건축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차츰 누적과 개선을 이어간다면 대한민국 건축의 중심에 서서 우리 기술 수준을 한껏 높여줄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 사회 전반에서 건축사를 필요로 하고, 건축사가 대중의 공감을 받는, 보다 공익적인 존재가 되길 바란다. 좋은 건물을 찾고자 할 때 혹은 집에 물이 샌다거나 수리가 필요할 때 등 건축과 관련된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이 건축사를 떠올렸으면 한다. 건축사협회가 대중의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헌도를 쌓아가며 건축사의 필요성을 넓혀간다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역할과 입지가 높아 질 것이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축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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