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 건축사(사진=최고은 건축사)
최고은 건축사(사진=최고은 건축사)

필자는 건축을 함에 있어 사무실 위치가 크게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방 소도시에 개소하게 되었다. 지역의 로컬 아키텍트로서의 자부심과 개성을 만들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면서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건축을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것에 회의감이 들곤 했다. 이곳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꿈꾸던 것들과 현실이 충돌되었을 때 오는 문제들이 건축을 힘들게 했다.

문제점 중 하나는 설계 대가이다. 일단 수도권과 지방 소도시는 설계비에서 차이가 난다. 사실 건축이나 다른 일들이 인맥에 의한 영향을 다소 받지만, 특히 지방 소도시의 경우 한 사람만 건너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 인맥 위주로 수주가 이뤄지고 있다.

인맥에 의해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적정 설계비 책정이 애매한 상황이 생겨버리기도 하고, 시장이 정해놓은 대가기준이 공공연하게 자리 잡혀 있기도 하다. 물론 이마저도 과도한 경쟁 앞에는 무의미해질 때가 많다.

이미 바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설계 대가와 그에 따른 공사비가 어찌 보면 건축의 질을 충족 시킬 수 없게 된다. 설계비가 낮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일을 끝내야 하며 한 프로젝트당 몇 달을 고민해서 좋은 건축으로 만들어 갈 수 없다. 

부족한 설계비는 설계 단계에서 고민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고, 설계도서가 간략해지는 만큼 시공 시 필요한 정보량도 충분치 않게 만든다. 도면에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공사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시공을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악순환들로 인해 건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적정 설계비와 설계 기간이 확보된다면 건축의 질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일들이 싫어 단독주택의 경우 한 프로젝트당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기간을 정해 프로젝트를 처리한다. 기간이 발생하는 만큼 도서의 양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상세 도면까지 그려가면서 건축의 질을 높이려고 한다.

건축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상응한 적정대가를 받으려고 하지만 설명을 들은 건축주들 10명 중 9명은 그냥 가버린다. 계약까지 이어지는 대부분의 건축주는 타 지역 사람들이었고, 설계 기간 동안 활발한 소통 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고, 설계 대가가 수도권보다 저렴하다고 밝힌다. 분명 수도권보다 가격경쟁력이 있지만 정작 이곳 지방 소도시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일련의 상황들을 접하다 보니 괴리감이 자꾸 생긴다.

그래서 필자는 민간건축 대가기준이 마련되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설계 대가가 공공발주 사업에 따른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을 따라가게 된다면 건축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주들도 만족할 만한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민간건축 대가기준 마련이 잘 이루어졌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