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본지 前 편집국장)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본지 前 편집국장)

2024년 새해 벽두부터 온라인 카페에 한 건축사의 각오 글을 보았다. 창업 후 처음 겪는 경기침체로 개인의 지출뿐만 아니라 가계지출까지 줄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줄이겠다는 각오였다. 많은 통계자료에서 보듯 교육비 지출 축소가 문화 생활비와 식대 다음인데, 그 건축사 역시 자녀의 교육비 지출 축소를 언급했다. IMF 이후 이런 각오 글은 처음 보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2007~8년 금융위기 때는 생각보다 건축계의 이런 발언이 많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아파트 분양하는 회사들 중심으로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지만 일반 건축까지 영향이 크지 않았다. 유사 이래 가장 호황이었던 코로나 시절의 건축사사무소는 불과 3년 만에 유사이래 두 번째의 빙하기를 맞는 듯하다.

1997~8년의 IMF보다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국가 경제 규모도 커지고, 국가 수준도 당시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성장했는데 이런 성장이 건축사사무소들과 무관한 듯하다. 아니 개인 건축사와 무관한 듯하다. IMF 경제 위기 당시에는 건축사보여서 위기감을 덜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건축사보다 지금의 건축사 업무환경은 더 나쁘다. 도대체 뭐가 좋아졌는가?

91년도 처음 아틀리에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했을 때 건축법은 단순했다. 건폐율과 용적률이 건축법에 있었으니…. 그 뒤로 수많은 법이 만들어졌다. 건축은 도시 관련 법으로 찢겨 나가고, 지구단위계획이 생겼다. 온갖 소방, 통신, 전기, 기계 규정이 생기고 협력해서 완성해야 할 각 지체들은 찢겨 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갈 길 가고 있다. 이제 구조까지 나서고 있다. 90년대에도 수많은 건축사사무소 종사자들은 대한민국 건축 설계 산업계의 열악함과 낮은 설계비, 사회적 인식 등을 토로하면서 더 나아지기 바랬다. 2024년 좋아졌는가?

80년대 국가 공공건축물 준공식에 초대받지 못한 한숨을 토로한 글이 2023년에도 등장한다. 아파트 평당 설계비 4만 원이 낮다고 한숨 쉬던 지인들은 자그마치 30년이 넘은 지금, 5만 원만 넘겼으면 소원한다. 설계자가 감리하고 공무원이 감독하는 전형적 사업 구조는 공무원의 책임 면탈로 감독과 감리가 뒤섞여서 미국, 일본에 없는 이상한 한국형 감리가 등장했다. 대가라도 제대로 받으면 모르겠는데, 대가는 90년부터 지금까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데 책임은 무한책임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설계대가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판결 이후 곤두박질쳐서 건축설계산업 종사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착취하는 경제수준을 만들었다.

표면적으로는 300명 대형 건축사사무소 규모를 1000명 넘는 건축사사무소로 키웠다. 여전히 단일경제 규모로 세계 3, 4위 하는 일본에도 경쟁할 규모인데, 국내 건축사사무소가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다. 전후 일본 건축은 이미 1960년대부터 독자적 건축세계를 펼치면서 동남아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건축사들이 소개됐다. 단게 겐조를 비롯해서, 키요노리 키쿠다케, 키쇼쿠로가와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사들이 진출했다. 그 뒤로도 얼마나 많은 일본 건축사들이 해외에 진출했는가? 롯데월드 잠실을 디자인한 키쇼 쿠로가와를 비롯 코엑스의 무역센터 타워는 당시 20대의 니켄세케이 설계담당이 했다. 2024년. 우리나라 건축사가 작가로서 해외 진출로 초대받은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국제 건축계에서 한국 건축이 작품과 건축사로 얼마나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가? 국내 풍토가 상품으로 건축을 치부하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분명 국가는 글로벌 10의 경제규모로 성장하고, 2023년 랭킹 기준 직장인 평균 급여가 16위 국가다. 국가의 모든 분야가 성장하고 모든 분야의 종사자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데 건축사와 건축사보는 90년대에 머물러 있다. 박리다매의 전형적 설계시장인 아파트 건축설계 시장은 외주와 관리, 그리고 감리로 판을 키워 외형상 커 보이지만 실상은 곪고 있다. 그 실상은 2023년 LH 아파트의 설계 부실과 감리 부실이었다.

2024년, 오늘의 개인 건축사와 건축사사무소 종사자인 미래의 건축사들. 이들에게 어떤 목표와 꿈, 희망을 줄 것인가? 당장의 은행 잔고가 비어가는데,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일까? 솔직히 건축설계산업 전 종사자들이 단 일주일 만이라도 생존을 위한 처절한 파업을 하면 좋겠다. 의사들의 호사스러운 파업은 꿈도 안 꾼다. 우리는 생존을 하느냐 마느냐다. 얼마나 더 이 산업계가 착취를 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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