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백양사의 창건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 승려 여환이 창건하였으며 당시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덕종 3년(1034년)에 중연선사가 중창한 후 종토사 혹은 정토선원으로 개칭하였고, 조선 선조 7년(1574년) 환양선사(喚羊禪師)가 백양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전설에 따르면,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영천굴에서 법회를 열어 금강경을 설법했다고 한다. 법회를 열고 사흘째 되는 날, 흰 양이 나타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레째에 법회가 끝나고 환양선사가 꿈을 꾸었는데, 흰 양이 나타나 '자기가 원래는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이었다가 죄를 지어 짐승이 되었는데, 선사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천인으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환양선사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암자 앞으로 나가보니, 흰 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으므로, 절의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는, 환양선사가 대웅전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니 산에서 산양들이 많이 내려와 경청하였으므로 백양사라 개칭했다고 한다.

각진국사의 중창으로 백양사는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각진국사의 속가인 고성 이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각진국사의 뒤를 이은 청수스님 또한 고성 이씨로, 고려 말 백양사는 고성 이씨의 원찰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청수스님 때 보수한 쌍계루의 기를 쓴 사람이 이색과 이색의 스승인 청수스님의 맏형인 행촌 이암이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훼손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으며, 현재 남은 건물들의 대부분은 1917년 만암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이다. 일본강점기 때 본말사제로 변경된 후 1917년 제2대 주지가 된 만암선사는 현재 남아있는 대웅전 사천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불총림 백양사라는 현판이 입구부터 눈에 띈다. 총림이란 수도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모습에 비유한 표현으로, 오늘날에는 조계종에서 참선 기관인 선원과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 계율 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큰 사찰에 붙이는 명칭이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쌍계루의 절경
절 입구에 다다르면 고려시대 때 처음 짓고 현대에 다시 세운 쌍계루가 보인다. 계곡이 아래로 흐르고 멀리 백암산 백학봉 바위가 배경으로 서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백양사를 대표하는 절경이다. 예부터 이곳은 전국을 대표하는 경관지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려시대 정몽주가 이곳 쌍계루에 대해 지은 시도 볼 수 있다.

백양사 경내에 들어가면 대웅전을 비롯한 절집들과 바위 봉우리인 백학봉이 절묘하게 어울린 장관이 펼쳐진다. 백양사 일대는 사계절 푸른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양사부터 백학봉 기슭까지 있는 수천 그루의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자나무는 우리나라 최남단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 해안가 몇 곳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곳 내장산 국립공원 정도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라 한다.

이 절의 비구니 정관스님의 사찰 음식으로 아주 유명하다. 불자인 프랑스 출신의 유명 셰프인 에릭 리퍼트(Éric Ripert)와도 친분이 있으며, 미국에서 그가 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넷플릭스의 음식 다큐멘터리인 ‘Chef's Table’의 시즌 3에도 출연했는데, 이 때문에 베를린 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기도 하였다.

출처 : 백양사 누리집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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