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철 건축사‧로코 건축사사무소
강상철 건축사‧로코 건축사사무소

건축을 전공한 뒤 건축사사무소에 취직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가 인상됐는데 그때마다 마치 나의 가치를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건축사 자격증 취득 후 사무소를 개소하고 나니 가치가 오르기보다 원점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개소 이후 적절한 설계비를 제안하는 것부터 고민스러웠다. 설계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의뢰 받은 프로젝트를 파악한 뒤 진행 가능한 업무 시간, 협력 업체 비용 등을 조사하고 동료 건축사에게 업계 평균 시세까지 확인했다. 나름대로 객관적인 정보를 토대로 비용을 산출했다. 그리고 세세한 건축사의 업무 범위, 프로젝트에 들여야 하는 정량적 시간 등에 상응하는 금액을 제안했다. 하지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 지지 않고 제안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소한 지 얼마 안 된 사무소라서 못 미더웠던 건가. 너무 비싼 비용을 제안한 건가.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허위 경력을 만들 수 없으니 계약 비용을 낮추는 쪽을 택했다. 건축주에게 설계비를 제안할 때 공공발주 사업 진행 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사급 현장은 공공발주 사업과 현실적으로 다르니 업무 범위와 대가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게 맞지 않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사무소에서 받았던 설계비를 제안해보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직 보여줄 결과물이 없으니 건축주가 무엇을 보고 일을 맡기겠나 싶었다. 결국 계 약 체결을 위해 기본 법규와 규모 검토를 무료로 하고, 설계비를 낮춰 제안하는 게 투자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들어야 했다. 점점 설계비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책정됐다.

이렇게까지 낮아져도 되는 걸까. 창의적인 작업에 값을 매기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건축사가 꼭 해야 할 기본적인 업무에 대한 가치마저 낮출 순 없지 않을까. 단순 용도변경과 같은 업무만 해도 그렇다. 용도변경을 위해 검토해야 할 많은 사항을 건축주가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기에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납득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사무소마다 비용이 천차만별이니 건축주는 가장 낮은 대가를 제시하는 사무소를 기대하며 찾아다닐 것이다.

근래에 대한건축사신문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민간 건축 설계 대가기준’ 같다. 민간 건축 설계 대가 기준이 마련된다면 앞서 이야기한 고민의 대부분이 해결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언제쯤 구체화 될까. 현실성이 있을까. 민간 건축 설계 대가기준 마련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는 건축사의 살림살이를 책임져 줄 뿐 아니라 건축사의 가치를 높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건축사가 처한 현실에 불평만 할 수는 없으니 여러 가지 일을 찾아 도전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건축사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공모전, 입찰, 감리, 해체 및 석면감리 등 불투명하고 난도 높은 업무로 눈길을 돌리는 건축사가 많을 것으로 안다. 모두 힘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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