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 근현대 서울시 기억의 보관소 ‘힐튼호텔’ 보존

역사-문화, 건축사적 가치 고려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보존’ 위해선 아트리움 건축내부공간으로 재현되고
객실부 매스 보존 이뤄져야

힐튼호텔 전경 (사진=임정의 사진작가)
힐튼호텔 전경 (사진=임정의 사진작가)

지난해 국내 현대건축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힐튼호텔에 대한 정비 계획이 발표되면서 건축계에는 호텔 철거에 대한 아쉬움과 보존 필요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헐어버리기엔 건축사적 의미,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의 배경 등 그 무엇 하나 아쉽지 않은 부분이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건축사는 “도심 내 위치한 건축물의 경우,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시가 발전하면서 수립되는 도시개발계획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가 되어야 할 문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다만 힐튼호텔의 경우 시대를 앞서 알루미늄 커튼월로 건축되었으며, 세련된 구조와 완벽한 디테일, 그리고 입체적인 로비 공간 역시 뛰어난 지형해석의 진수다”며 힐튼호텔의 건축적 의미를 강조했다.
 

입체적 공간감과 개방성이 돋보이는 아트리움 (사진=임정의 사진작가)
입체적 공간감과 개방성이 돋보이는 아트리움 (사진=임정의 사진작가)

◆ 개방된 공간감, 지형 해석의 백미,
  “다시 재현하기 어려운 공간”


실제 힐튼호텔은 남산로 서쪽끝에 위치한 경사진 대지를 활용해, 2개층의 퍼블릭 스페이스 모두 채광이 되도록 계획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호텔에서 보이는 포디움 블럭이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나치게 수평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매스의 양단을 30도 굴절시켰으며, 외장재는 알루미늄 커튼월에 브론즈빛 이중유리를 끼웠고, 후면으로 전개되는 저층부는 발틱브라운 화강석으로 감쌌다. 

설계과정에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점은 바로 수직으로 연계되는 개방된 공간감을 기능상의 희생 없이 구현한 점이다. 오늘날 건축 전문가들이 ‘지형해석, 입체적인 공간 구성의 절묘한 한 수’로 손꼽는 바로 그 대목이다.

마침 힐튼호텔은 1985년에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해, 서울의 건축문화·도시미관 그리고 건축기술 발전에 기여한 건축 작품으로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건축상’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 건축의 아이콘이 사라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작년 4월 도시건축전시관에서 ‘힐튼호텔과 양동정비지구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 서울시립대 배형민 건축학부 교수는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 면에서는 다시 재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평가할 만큼 건축사적 의미, 문화사적 가치, 공간의 상징성 등이 잘 드러난 설계라고 극찬하며, “우리 사회가 보유한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허물기보다 이 자산으로 21세기의 어떤 이정표를 만들겠다는 시각으로 건물의 미래를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전무후무한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호텔이라는 공간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건축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호텔은 모든 국가에서 근대의 징표로 통하고, 힐튼호텔은 한국의 경제발전, 현대사를 관통하는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 없다.
 

(자료=서울특별시)
(자료=서울특별시)

◆ 호텔 정비계획 변경안,
   외부공간과 로비의 연계에 집착,
   건축내부 공간에서 느끼는
   건축미 잃어버려


11월 22일, 서울시는 힐튼호텔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결정 변경(안)을 수정가결했다.

서울시 정비 계획 결정 변경안에 따르면 힐튼호텔 부지에는 높이 약 143미터의 빌딩(업부시설)과 호텔, 판매시설 등이 들어선다. 건물을 빌딩과 호텔 2개동으로 나눠 짓도록 해 동과 동 사이 간격을 넓혀 도심에서 남산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추가 확보했다. 또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인근에서 개발 대상지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해 보행자들이 남산까지 이동하는데 수월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호텔의 매스 보존이 없어지고, 아트리움(메인 로비)도 부분적인 건축 요소(계단·기둥, 보)만 외부공간에 가까운 형태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호텔의 건축사적인 가치를 고려해 메인 로비를 보존했다고 하지만, 건축계에서는 ‘반쪽짜리 보존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텔의 아트리움은 이탈리아산 대리석, 브론즈 구조재, 트래버틴 바닥, 오크 패널링으로 마감됐으며 높이 18미터의 창조적인 공간이다. 레벨 차이를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로비공간으로 극복했고, 위층의 출입구에서 아래 로비를 향해 설치된 계단은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하며, 공간의 백미로 자리한다. 그런데 정비 계획 변경안은 외부공간과 로비공간의 연계를 강조한 나머지 건축 내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입체감과 개방감을 얻을 수 없게 됐다. 

객실부의 매스 보존도 아쉽다. 콘크리트 패널이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알루미늄 커튼월 마감에 양쪽 끝을 30도 구부린 삼단 병풍형태를 그려낸 호텔 매스는 계획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주)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박흥균 대표는 “힐튼호텔의 보존을 염두에 두고 도시건축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현재 개발사가 대우재단빌딩과 서울역 메트로타워를 함꼐 소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한 부지로 만들거나 공중권을 부여해 두 건물의 용적률을 재분배한다면 개발수익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호텔이 가진 건축문화적인 아름다움도 보존이 가능하게 된다”고 전제한 뒤 “한편으로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양동지구 내 쪽빵촌의 작은 필지 일부도 함께 개발하도록 한다면, 오랜기간 진행되어온 양동지구 재개발도 완성되고, 용산공원 조성 후 주요부도심으로 서울역지구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