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흔 건축사(사진=이상흔 건축사)
이상흔 건축사(사진=이상흔 건축사)

오늘도 책상 앞에서 지적도 한 장으로 세상 모든 짐을 지고 번민하고 계실 회원님들, 2겹 3겹 껴입고 북새 바람에도 현장과 싸우고 계실 회원님들, 전화 벨 소리에 긴장한지 오래지만 관할 허가부서에서 걸려온 전화 통화하면서 열통 터지고 계실 회원님들, 우체통에서 국세청 우편물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질 회원님들, 빚쟁이도 아닌데 수시로 청구서 날아오는 걸 보며 한숨 쉬고 계실 회원님들, 나는 예전에 안 그랬는데 요즘 직원들은 왜 그런지 눈치만 보고 계실 회원님들, 이것이 건축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타이틀 방어한지도 20년이란 세월이 됐다. 맷집으로 버티고 있는데 우리에게 짊어질 책임감의 무게는 왜 이리 자꾸 늘어만 가는 건지. 도대체 뭣이 중한지도 모를 정도로 다변화 되어가고 있는 건축 관련 법과 행정에 한숨만 쉬게 된다.

우리 본업인 설계·감리보다 각종 행정업무인 서류를 작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감리교육을 들었다. 상주감리가 아닌 일반감리인데 상주감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책임과 공사진행 여부에 따라 매일 현장 감독을 해야할 것 같은 내용이었다. 

감리 서류 또한 복잡하고 작성할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따지고 보면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닐까 생각됐고, 사실은 이 모든 책임을 우리 건축사에게 부담 지우려는 시스템이 아닐까 의문도 들었다.

각종 심의 역시 골머리를 앓게 하는 부분 중 하나다. 지방에서 일하다 보니 계획관리지역에 대한 설계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개발행위 심의 대상 여부부터 검토하게 되는데, 심의 규정, 기간 때문에 고객과 여러 번 부딪치게 된다. 어려운 시기다 보니 소규모 부지 매입, 최소한의 경비로 사업 계획을 하게 되고, 때문에 부지 내 활용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실제 개발행위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부지 내 활용도에 대한 많은 제약이 따른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면 이해할 수도 있고, 인근 부지에 개발행위가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있으며, 고객의 설득도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부지를 매입하고 사업하는 당사자가 심의 결과에 수긍하고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 설계자와 고객과의 거리를 두게 만든다. 개발행위 심의뿐만 아니라 모든 심의에서 사업주도 필히 참석해 행위나 취지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추가적으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개발단지 내 건축선 지정에 대해서도 사업주와 많이 부딪히는 사항이다. 건축물의 위치나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건축선을 지정할 수 있다고 하는 법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도로와 도로를 연결하는 보행자 도로에도 건축 한계선을 지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초 도시계획할 때 한계선까지 확장해 보행자 도로를 개설하면 될 것을 토지 소유자에게 그 짐을 떠맡기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일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많이 발생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건축사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편으로 건축행위에 있어 건축행정이 좀 더 간소화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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