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연구소장(사진=김남국 소장)
김남국 연구소장(사진=김남국 소장)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게 전문 분야 이외의 일을 맡기는 건 효율성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딴 곳에 한눈팔지 말고 전문성을 더 키우고 정교하게 다듬는 데 온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경쟁에서 더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최고의 성과를 내려면 집중과 몰입이 필수적일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2023년 11,12월 합본호)에 세계적 경영학 학술지 ‘Organization Science'의 논문이 소개됐는데, 상식과 달리 전문분야 이외의 일을 하는 게 자신의 전문 분야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야구에서 가장 전문화된 포지션은 단연 투수다. 작년까지 미국 프로야구 내셔널리그에선 투수들도 항상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타석에 서야 했다. 연구팀이 1997년부터 2018년까지 내셔럴리그 경기의 200만 타석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투수가 타석에서 어떤 성적을 냈는지, 이후 투수로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가설을 검증했다.

투수가 타자로 출전해 실패하더라도 본업인 투수 성적이 좋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투수가 타자로 출전해 실패하더라도 본업인 투수 성적이 좋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예상대로 투수들은 타석에서 성적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런 실패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타석에서 실패한 투수들은 이후 투구에서 평소보다 타자를 아웃시킬 가능성이 더 컸고 첫 세 타자 중 한 명에서 득점을 허용할 가능성이 낮았다. 이런 효과는 긴장감이 감도는 팽팽한 경기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즉,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를 경험한 게 오히려 득이 돼 투수 본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효과를 ‘강요된 과제 열위(forced task inferiority)’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이 이후 당초 본업인 전문 분야의 일을 할 때 더 분발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연구팀과 인터뷰를 한 투수들은 타석에서 실패하고 난 다음에 더 공격적으로 투구하게 된다고 일관되게 말했다고 한다.

직무가 세분화된 모든 관료적 조직에서 이는 활용해볼 가치가 있는 개념이다.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현장에서 서툰 솜씨로나마 잠깐 생산직 업무를 경험하게 하거나, 외부 고객을 만나 PT하기 전에 직접 서툴게 만든 파워포인트로 내부 PT를 해보게 하는 등 전문가의 비전문적 업무 수행은 나름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이 연구 결과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한 분야의 전문성 확보에만 몰입하기보다 일정 시간을 과거에 해 보지 않았던 분야에 도전해보는 과정이 본업의 전문성 강화에 오히려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하더라도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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