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소년이 있었다
- 김근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
소년이 내게 말했다 고요히
나는 소년의 솜털 부숭한
귓불을 쓰다듬었다 이따금
소년의 귀에선 내가 쓰다 버린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문장들을 기워
새를 만들었다 그보다는
내 가슴을 오려
새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걸
어두운 벤치 위에 소년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동자를 흐리며 그만
눅눅한 공기 속으로 소년은
깃을 치며 날아갔다
나는 그저 돌아갈밖에
얇고 여린 소년의 껍질이
어깨 위에 가볍게 걸쳐진 채
자꾸 나부끼던 밤이었다
- 김근 시집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중에서/ 김근/ 문학과지성사/ 2014년
우리에게는 늘 그런 소년이 있다. 내가 돌봐 줘야 할 소년이고, 나를 돌보는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소년을 조금씩, 자주 배반하며 내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소년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불편해하기도 한다. 미안해하는 건 자꾸 그럴 수밖에 없어서이고, 불편해하는 건 언제나 소년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은 내 어깨 위에 있지만 뒤돌아서면 또 어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다. 소년은 혹시 울고 있을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