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건축사(사진=이현택 건축사)
이현택 건축사(사진=이현택 건축사)

얼마 전 사무실로 프로젝트 문의가 와서 계약 가능 여부를 검토하다 건축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업무를 맡지 못하겠다고 한 일이 있었다. 용도변경을 포함한 대수선 문의였는데, 합법적인 방법으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프로젝트였으나,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이는 허가를 받을 수 없기에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번만이 아니라 그전에도 이와 같은 경우가 몇 번 있었으나, 그때도 건축주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사항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개업 후 3년 정도 사무소를 운영하며 이런저런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 정도 적응되기도 하고 해결되는 문제도 있지만, 장애인 협의와 BF 인증에 관한 업무는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의 목적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나, 과도한 기간과 업무 기준에 대한 주관적 해석으로 발생하는 행정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늘 애를 먹곤 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신축 증축, 용도변경 등을 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등 관련 기준에 따라 설계를 하고 BF 인증을 받아야 한다. 민간 프로젝트 또한 용도와 규모에 따라 필수 시설을 설치하고 허가 시 관련 사항을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인증업무를 할 때 보통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협의와 심의에 걸리는 시간의 문제다. 공공 프로젝트는 기한 안에 각종 인증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신청 건수에 비해 인증기관이 적다 보니 접수부터 완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관련 법규에 따라 BF 인증을 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 LH,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생산성본부 인증원, 한국부동산원,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한국환경건축연구원, 한국건물에너지기술원 등 8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인증 접수를 하고 심의를 거쳐 예비인증까지 받는데 통상 4∼5개월 정도가 소요되기도 하는데, 기본계획 수립 후 바로 접수하더라도 주어진 용역 기간 안에 인증을 완료하여 납품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재 공모 당선을 통해 공공 발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과업기간이 120일로 길지 않은 프로젝트로 허가 및 납품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공식적으론 용역 중지 중에 있다. 바로 BF 인증에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공공 발주 용역은 기간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발주처에서 BF 업무 기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용역 중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BF 인증 기간으로 인한 리스크와 부담은 늘 건축사의 몫이다.

둘째는 심의와 협의에서 발생하는 편의시설 설치 기준 준용에 관한 문제이다. 장애인 편의시설 협의나 BF 심의를 받다 보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설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보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협의 및 인증 과정에서 보완은 당연한 업무 중 하나이지만, 문제는 심의 의견이 늘 기준에 근거 또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관된 기준과 매뉴얼을 가지고 인증심사를 해야 함에도 심사위원마다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거나, 법과 기준을 넘어선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종종 이러한 사항이 건축사의 계획 의도와 상충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건축주가 되기 마련이다.

건축은 다양한 분야와 얽혀 있고, 여러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문제가 다양한 만큼 정답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종합적 시각에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 건축사의 주된 업무이자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적법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있어 적어도 BF 인증과 같은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건축의 본질이 가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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