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안 건축사(사진=최지안 건축사)
최지안 건축사(사진=최지안 건축사)

건축은 사회적 행위로서 수십 가지 법령과 연계되어 있는 데다 매번 다른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해석과 적용이 특히나 까다롭다. 일례로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로 신설된 소방관진입창 규정이 있다.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에서는 기술적으로 삼중유리 이상의 열관류율을 요구하면서 피난규칙에서 규정한 소방관진입창은 이중유리까지만 허용했기에 현실적으로 적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소방관진입창에 한해 열관류율 기준을 완화했다가 현재는 진입창을 삼중유리까지 인정하는 등 수차례 개정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는 복합적인 조건의 문제를 한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 단편적인 법 개정으로 다양한 상황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제정된 건축자재 등 품질관리 기준에 의해 이제 모든 현장에서 외벽복합마감자재의 경우 실물모형실험을 요구하고 있다. 외단열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대다수 건축외장이 복합자재이고 외부 단열재로 습도에 약한 불연 단열재 선호도가 낮으니 많은 현장에 적용될 것이다.

새로 실물모형시험을 해야 한다면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지게 되고, 자연스레 실물모형시험을 통과한 표준 방식의 적용이 유도되면서 건축사들의 재료와 디테일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접근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위축시킬까 우려스럽다. 포비아적 관점에서 문제가 된 시스템 전체를 부정하고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은 미처 예상치 못한 많은 부차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지점은 시장의 혼선이다. 시장에서 수용하고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기술발전에 투자를 유도하고 자재의 안정적인 수급을 고려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의 뚜렷한 방향 제시와 단계적 법 개정을 통해 안정적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건축법의 특수성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대부분 대상 자체가 개정 이후 신축 시설에 해당되기에 절대 다수인 기축 시설은 제외된다는 점 때문이다. 노후 건물이 가진 수많은 문제는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신축 건축물에 지우는 건 자칫 문제의 간단한 해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를 시행하는 방식은 행정적인 편의에 의해 정량적인 방식이 선호되는데, 실질적인 실효성을 따지자면 수치적 접근에서 벗어나 사회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전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선의에 대한 의심도 아니다. 다만 불완전한 법령의 개정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불필요한 사회적 손실을 줄이고 본래의 의도대로 실효성을 가지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방향과 속도에 있어 다수가 공감하고 수긍하는 과정이 아쉽다. 개정 법령이 불합리하게 여겨진다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편법적으로 우회하는 방식이 등장하게 된다. 직면한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과 안전 이슈는 더 불거질 것이다. 장기적인 방향성과 이를 구현할 단계적 계획, 다각적인 검토와 사회적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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