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세목


▥이다 좀 가져와 액자에 넣을 그림이 필요해 좀 빌려줘 편지 쓸 일이 생겼어, 의 ▥ ▥의 ▥이다 ▥과 ▥이다 읽을 수 있다 읽지 않을 수 있다 네모인 ▥, 옆면이 우글우글한, 책장에 넣는다. 낯설게 만들어 보자 연달아 말한다 거울 앞에 세워둔다 그것이 너는 누구니? 스스로 물을 때까지 기다린다 읽으면 똑똑해 지나 아니요 ▥은 읽는 것입니다 스테이플러 잘깍, 잘깍 잃습니다 잊는다 테이블이 필요해 생각을 한다 원하는 테이블은 ▥에게 묻는다, 다리 긴 테이블을 주문한다 어느 의자와도 짝이 될 수 있는 테이블 그 위에 ▥을 뒤집어 놓는다 테이블과 ▥ 짝처럼 보이게 ▥을 테이블의 밑에 던진다 ▥과 테이블이 짝처럼 ▥ 읽는 사람이 ▥ 위에 엎어져 잔다 ▥의 꿈을 꾼다 ▥을 얼굴에 얹고 잔다 ▥이 꿈을 꾼다 ▥의 짝이거나 ▥이 짝이거나 짝과 짝이거나 앞장이 뒷장의 밑에서 사이가 좋다 뒷장이 앞장의 내용을 예상 표절했다 정교하게, 책

 

―최세목 시집 'ㅊ' 중에서/ _방1/ 2022년

책(冊)이라는 한자는 갑골문에서 찾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시집 'ㅊ'은 본격적인 타이포그라피로 전체가 꾸며진 시집이다. 제본도 드물게 누드제본을 했다. 책등을 보면 ▥과 닮았다. 읽는 사람은 편하게 읽기를 원하지만 쓰는 사람은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전달할수록 읽는 사람은 불편해지는 어긋남이 생긴다. 쓰는 사람의 애정이 더할수록 읽는 사람은 더 오리무중이 된다. 이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번역서를 재밌게 읽는 이유다. 그러나 오류 속에서도 깨달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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