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건축사(사진=송수연 건축사)
송수연 건축사(사진=송수연 건축사)

지인을 통해 사무소 소책자를 봤다며 연락이 왔다. 전화로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허가는 난 상황이지만, 입면만 다시 디자인하고 싶다고 했다. 인허가도 나왔으니 빨리 디자인해 바로 지었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에게 나는 전면만 그림으로 대충 그려 수정하면 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현재의 도면과 상황을 검토 후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건축주는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내게 다짜고짜 비용을 물었다. 설계와 디자인 감리비용에 대한 대략의 가이드만 안내했는데 건축주는 난색을 표했다. 빨리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면 하나 바꾸는데 시간을 들여 인허가 비용만큼 받으려는 거냐는 말을 끝으로 그 건축주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정도 애를 쓰고 설계대가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물 흐리게 된다고 농담을 듣던 내가 건축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면, 처음 인허가를 내신 건축사사무소에서는 도대체 얼마를 받은 건지 궁금했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고 상담을 하다 보면 소장님, 대표님, 건축사님, 실장님, 그리고 설계사님 등 다양한 호칭을 듣는다. 호칭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김춘수의 시 처럼 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되듯 상담하는 사람들의 건축사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 표현된다. 호칭이 거기서 끝이 나면 부르고 싶을 대로 부르셔도 상관이 없지만, 건축사를 대하는 태도와 지불하고 싶어 하는 대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호칭들을 계속 듣는 걸 보면 건축사의 위상이 생각보다 확고하지 않다는 게 느껴져서 씁쓸한 마음도 든다.


민간 건축설계대가는 대가기준 및 서비스 범위를 확실히 정한 뒤 작업 후에도 대가조정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과 다르게 기준이 건축사사무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 않나 싶다. 시장의 조건이나 물가상승률과 전혀 상관없이 건축사의 경험, 역량뿐 아니라, 지역과 기타 요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어디서인가 듣고 와서 설계비는 얼마면 된다고 들었다거나 언제 몇 퍼센트 줘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약형태나 부가서비스에는 전혀 관심 없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어렵게 대가기준을 산정하고 난 뒤, 계약서에 특약 조건을 제시하고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로 반복되는 설계변경과 용도변경 등의 추가 작업에 대해 적절한 인력비용을 요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시공 중 건축물에는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하는데, 추가되는 변경들의 순서에 따라 요구조건이 변하며 적법하게 시공비가 낮아지는 경우에도, 건축사사무소의 업무 증가에 상응하는 설계대가가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민간 건축설계대가의 현실화가 어렵다 보니, 해체감리대가와 비교하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설계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규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감리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점점 더 감리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고 건축사에 대한 광범위한 책임과 의무가 늘어가는 실정이다. 감리의 권한 강화 없이, 법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익에만 골몰하는 시공사와 건축주 사이에서 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부담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해체감리는 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해체감리업무 대가기준은 일 한 일수대로 산출기준이 명확하기에, 대다수의 건축사들은 사무소 운영과 생계를 위해 참여하게 된다. 민원의 증가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감리자 복수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위험한 해체현장에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현장을 지키다보면 해체공사 감리대가 기준이 높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민간 설계대가와 비교하면 감리비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민간 설계대가가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감리비가 과도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본다.

건축사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가 커짐에 따른 업무량 증가와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한 적절한 민간 대가의 현실화 노력이 다방면으로 필요하다. 대한건축사협회에 신규 건축사사무소 개설 대표 건축사는 의무가입하도록 건축사법이 개정되었다. ‘건축물 안전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공공적 가치를 건축에 반영하기 위한 건축사의 업무 경쟁력 제고가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는바, 건축사에게 필요한 높은 수준의 역량 및 윤리의식을 자율적으로 함양하여 건축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개정 이유라고 한다. 이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역량, 책임과 의무가 건축사들이 짊어져야 할 커다란 짐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작업량에 비하여 적절한 대가를 확보하지 못한 건축사들은 사무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회의 건축사들에게 말로만 건축주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역량과 책임과 의무가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대가 산정 기준이 정의되고 마련돼야 한다. 지속적인 건축설계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적정 대가 산정 기준이 제시되어 회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저가 수주에 나서지 않도록 하고, 그 민간 대가만큼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가이드와 사례가 잘 정리되어 회원들에게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민간설계대가의 정상화에 추가하고 싶은 것은 신규 사무소 개설 건축사 교육이다. 건축사사무소의 절반이 1인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인 현실에서, 신규개설 초기 건축사들이 각개전투로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무실 개설에 대한 가이드도 체계화되었으면 한다. 법적 규정 준수만 교육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개설부터 회계 및 재무관리, 인적자원관리, 운영 및 비용 절감, 법률 및 컨설팅 서비스도 원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바란다. 개설을 마음먹은 건축사들에게 건축사협회 가입은 법적인 면과 실무적인 면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의무가입이 아니더라도 회원 수는 자율적으로 늘었을 것이다. 그 시작의 교육에 작업의 범위, 계약조건 변경, 추가 비용 결정 방법, 결제 일정 등도 포함되어 건축사들이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계약 시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지정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사례에 대한 지원이 신규 사무소 개설 건축사에게는 더욱더 절실하다.

민간 건축설계대가의 정상화는 건축사 개인의 자존심과 생존의 문제일 뿐 아니라 건축산업 전체의 자존심과 생존의 문제다. 건축사에게 요구하는 전문성과 작업량의 증가로 작업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추가되는 상황에서 현실화되지 못한 민간 대가는 현장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사무소를 존폐의 위기에 몰아넣게 된다. 건축사의 전문성과 역할은 건설프로젝트의 품질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므로, 보장되지 않는 대가는 결과적으로 건축 프로젝트의 품질과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해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버티도록 좌시하지 말고, 건축산업의 어떠한 분야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도록 대한건축사협회가 든든하게 뒷배로 자리 잡아주길 기원한다.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시대가 열린 이 시점에서, 건축사 개개인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역량에 맞는 가치를 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협회가 힘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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