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숙(山宿) 
산중음(山中吟) 1

- 백석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을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 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중에서/ 문학동네/ 2007년

백석의 시는 따뜻하고, 권태롭고, 고요하다. 따뜻한 것은 목침들에 묻은 새까만 때를 보고 더럽다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베고 어딘가로 뿔뿔이 떠났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권태로운 것은 ‘목침들’이다. 시인은 ‘목침을’ 베고 누운 것이 아니라 목침들을 하나씩 베어보며 거기 묻은 때의 주인들을 생각한다. 방을 이리저리 굴러 뎅기며 목침들을 베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요한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누가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돌아 누은 등도 없다. 그 아무런 일도 없는 속에서 백석의 시는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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