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경 건축사 · 비전 건축사사무소(사진=류재경 건축사)
류재경 건축사 · 비전 건축사사무소(사진=류재경 건축사)

과거 임의가입이었던 전문가단체들이 최근 다시 의무가입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한변리사회,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가 그러하다. 대한건축사협회(이하 협회)는 의무가입 건축사법 유예기간이 끝나는 올해 84일을 기해 본격적인 의무가입 시대를 맞게 됐다.

지난 20년간 임의가입제 하에서 전문직 위상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퇴보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높다. 건축사업계는 의무가입을 기점으로 변화와 개혁의 계기를 맞은 바 협회를 통해 흩어져있는 의견을 하나로 모아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건축사가 사회에 기여하는 본연의 역할에 한걸음 다가가야 한다. 의무가입을 통해 모든 건축사들이 공통된 윤리와 규범 아래 업무를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더 좋은 건축물을 공급하고, 이를 통한 건축사들의 처우와 위상도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자의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건축사 업무환경이다. 현재 건축사보수 및 업무기준폐지로 민간에서는 대가기준 자체가 없어 민원이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적정 업무대가를 받고 수주하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제살 깎기 저가수주와 과당 경쟁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차단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협회가 의무가입단체로 거듭난 시점에서 보다 선진화되어 보편타당한 협회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향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의무가입 건축사법 개정으로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그리고 윤리의식 등 공적 역할 강화와 업계 자율 정화 기능이 회복될 수 있게 됐다. 먼저 협회는 명실상부 건축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단체로서 국가 정책과 사회의 과제들에 대한 건축적 해법을 적극 제시해야 하겠다. 미국건축사협회가 국가 건축 관련 법이나 정책에 깊이 관여하면서 업계 규제 완화와 건축전문가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전방위로 나서는 것처럼, 의무가입을 통한 새로운 단체 위상에 걸맞게 국가 건축 정책 동반자로의 역할을 위해 힘써야 한다.

회원들의 윤리의식 고양도 협회의 주요 과제다. 그동안 협회는 의무가입을 추진하며 약속했던 건축사 윤리 강화와 건축계 상생을 위한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정관 개정 및 윤리규정을 제정하고, 건축사 윤리확립의 구심점인 중앙윤리위원회 위원 과반수를 정회원 외 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로 구성했다. 이러한 변화에 의미를 두기보다 이제 의무가입 10·20년 후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을 세우는 일 역시 중요하다. 공공재인 건축물을 설계·감리하며, 건축물이 생성되고 멸실되기까지 전 부문에 걸쳐 역할을 하면서도 일한 만큼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다. ‘좋은 건축물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직업의식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건축서비스산업시장 민간부문의 경우 자율경쟁해야 한다는 공정위의 조치에 따라 전체 허가건수 97%를 차지하는 1,000m² 이하 건축물의 설계대가가 30년 전 대가로 형성돼 있다. 그간 최저임금이 8배 오를 것에 반해 설계비는 그대로인 상황으로, 협회는 이에 대한 연구와 정책토론회 등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민간 건축 설계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통계청의 건축사사무소 규모별 매출 현황에 의하면 전체 3%에 불과한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49%의 매출이 발행하고 있다. ‘매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구조적 불균형으로 설계시장 질서가 붕괴되어 신진건축사들은 더욱 설자리를 잃고, 대다수 사무소가 열악한 업무환경에 놓여 우수 인력이 이탈하는 등 사무소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하는 등 건축계 공동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협회가 건축계의 의견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고 업무대가 정상화와 건축안전 확보 등 건축서비스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며 건축사의 위상과 신뢰를 바로 세워야 하겠다.


한편, 협회 내적으로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추대회원 증가에 따른 대안 모색 등 회비제도 개선, 신 수익원 개발, 출판사업, 회원 아카이브 라운지 조성 등 변화된 모습으로 건축사 통합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건축사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유튜브를 통한 건축전문방송 송출과 함께 저작권보호센터의 운영 역시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의무가입 완성을 비롯한 현안 해결을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일부 건축사들의 반발 의견도 겸허히 수용해야 하며, 서로 간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 역시 갖춰야 한다. 이제 의무가입 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을 계기로, 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협회가 건축사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열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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