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흔

- 박성준

숲이 나를 불렀으니 이제 좁은 몸속
옷장에 걸려 있는 바람들
흐물거리는 빗장뼈를 밤의 내부로 가라앉히네
두꺼운 승모근이 옷걸이마다 붙잡고 있던 바람
꼬리 아홉 개 달린 별똥별
여우야 가지마 가지마 나는 밤을 만지려고
그림자에 스며들어 누웠네
뻐꾸기 시계를 끌어안고 잠든 사내가
옷장으로 들어가 바람이 되었다는 소문과
그 소문에 오독당한 귀들이 떠오르네
나사가 삐걱거리는 내 복부를 열어젖히고
보았을까 그런 밤의 축축한 잔해들
혈거하는 울음들이 무릎 꿇은 바람을 일으켜
여우 굴에 벽화를 그리네, 밤과 내통한 빛이 그리워
내 갈비뼈, 어두운 물속에서 가만히 떠올랐던가
울음이 악보를 찾아가듯 숲이 밤을 찾아가
어두운 옷장 속 빈 것들이 나를 기다리네
깜빡깜빡 허공을 긋고 가는 저 불빛들

 

- 박성준 시집 ‘몰아 쓴 일기’ 중에서/  문학과지성/ 2012

연금술에서 납을 금으로 변성하려면 먼저 자신의 물질이 사라져야 한다. 여기서 ‘자신’은 원래 물질인 납을 뜻하기도 하지만 연금술적인 변성은 필연적으로 연금술사 자신을 죽여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육체를 죽여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무속에서 말하는 신내림의 병적 증상도 역시 같다. 이 시에 나타나는 해부학적인 진술들은 육체가 사라지는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늙은 왕이, 타오르는 불속에서 정화 되어 젊은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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