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권 건축사(사진=최정권 건축사)
최정권 건축사(사진=최정권 건축사)

‘3040, 부모보다 더 빨리 늙는다’라는 의사의 경고를 기사를 통해 읽었다. 이유는 중독성을 높이는 플랫폼 경제에 노출돼 뇌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유튜브·넷플릭스·틱톡 등 영상에 노출되어 수면을 박탈당하는 때가 많은 탓이다. 또한 긴 출퇴근 시간, 불안정한 커리어, 재정 악화, 거주지의 불안, 초가공 식품에 대한 노출 등도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의사는 가능한 젊은 시기부터 자연스러운 신체활동과 운동·금연·절주·절제된 식사, 마음챙김, 스트레스 관리, 회복 수면, 영적 건강 등으로 노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사의 경고에 깊이 공감하며 공간을 다루는 건축사로서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위로의 공간은 무엇일까 찾아보았다. 적당한 신체활동으로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삶의 가치 및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곳은 어디 있을까?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 있는 장소로 생각되는 곳이 바로 흙이 있는 공간이다.

흙 속에는 30개가 넘는 씨앗이 숨어 있다고 한다. 흙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식물을 돌봄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느림의 공간으로 긴장을 이완시켜주고 기다림의 인내도 갖게 한다. 흙이 만든 식물과 교감을 통해서는 불안감,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다. 흙이 만든 나무와 꽃은 열매를 맺고 새와 곤충을 부른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생명들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일부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하지만 각박한 도시의 상업, 업무, 거주공간은 이런 흙을 조금이라도 허락하지 않는다. 좀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많은 상품을 진열해야 한다. 주거공간은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해야 하기에 흙이 있는 공간은 사치 같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와 상대적 빈곤에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흙으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분이 있는 테라스, 공원을 바라보는 창, 텃밭이 있는 옥상, 풀과 나무가 자라는 마당, 마을의 포켓정원과 같은 곳 말이다. 이곳에서 흙은 피곤에 지친 각자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필요한 영혼의 휴식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흙이 이룬 자연의 장소는 우리의 영혼에게 지금도 지속적으로 위로와 쉼이 되는 말을 건네고 있다. 

“모든 나무가 똑같지는 않다. 모두 떡갈나무처럼 빨리 성장해야 할 이유는 없다. 꽃도 마찬가지다. 큰 꽃도 있고 작은 꽃도 있다. 모두 같은 시기에 핀다면 세상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남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자신의 봄을 일부러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월든>_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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