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동방오현 중 한 사람인 문원공 정여창(文獻公 鄭汝昌)을 향사하는 함양 남계서원(咸陽 灆溪書院)은 조선시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사액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이다.

정여창은 1450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그의 성리학 이론은 정몽주 · 김숙자 ·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 전기 사림파의 주자학적 학문을 계승한 것이어서 1610년(광해군 2년) 문묘에 승무(陞廡)되었다. 정여창은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하였고 실천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하였다.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을 유생 개암 강익(姜翼)을 중심으로 30여명의 선비들의 공의로 1552년(명종 7년) 남계(藍溪)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1974년 2월 16일 경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어 있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서원의 역사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1552년(명종 7년)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그 후 1603년에 나촌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하였으며,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의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여창을 모신 서원은 전국적으로 9곳에 이르며, 그 중 주된 곳이 남계서원이다. 남계(濫溪)는 서원의 곁을 흐르는 시내의 이름이다.남계서원은 구릉을 등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고, 그 앞 넓은 들판 너머로 안산인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 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건물 배치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과 달리 남계서원은 서원의 제향 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뒤쪽에 자리 잡고, 강학 공간에 속하는 건물들은 서원 영역 앞쪽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초기 배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다.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었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로 남았다.

문화재청은 2018년 1월 이곳 함양 남계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을 ‘한국의 서원’으로 지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하여,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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