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는 기후 위기, 사회적 불평등 등 복합적인 대외적 상황 속에서 공공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인 안목이 건축사에게 요구되고 있다.

달라진 환경 변화에 미국건축사협회(AIA)탁월한 설계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통해 건축사들과 탐색적인 질문을 공유하고 있다. 건축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한 건축 환경 조성을 위해 대한건축사신문도 탐색적인 질문을 공유하며 확장된 시각을 나눠보려 한다.

아홉 번째로 변화를 위한 디자인을 다룬다. 기후위기를 비롯해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건축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불확실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건축물이 사회, 경제, 환경 변화로 인한 미래의 위험과 취약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향후 변화하는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 건축물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변화를 위한 디자인 Design for Change

이제 건축사는 설계에 앞서 기후 위기, 사회적 불평등과 같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대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건축계와 건축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AIA는 변화된 사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건축사가 설계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먼저, 탄력적인 설계 전략의 추구다. 설계의 탄력성을 추구하는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건축물의 수명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설계단계에서부터 재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건축물 성능을 확보해야 한다. 건축물 자체에 내재성과 유연성을 갖춰야만 자연 재해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대피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건물의 사용 수명이 끝난 이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건축물이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도 고민해 볼만 하다. 상업 시설이라면 냉난방과 같은 자원 공유,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수동적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주거 공간이라면 대피소를 설계하고 식량과 물을 저장하는 공간과 통신 서비스 등의 설치를 생각할 수 있다

(사진=AIA)
(사진=AIA)

수동적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도 중요하다. 수동적 생존 가능성이란 건축물 혹은 구조의 구성 요소가 자연적, 인공적 재난 발생 이후에 필수 기능을 유지하고 손상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건축사는 이를 위해 건축물의 성능과 목표, 예상 시나리오 등을 정리한 뒤 백업 전원이 필요한 중요 인프라와 서비스를 식별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 흔한 정전을 대비하기 위해 건물의 방향을 고려해 자연광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식수 확보를 위해서는 빗물 수집과 여과, 음용수 저장 등을 사전에 평가해 식수 공급 가능성을 확인해 봐야 한다. 최소 일주일간 공급할 수 있는 식량 저장 공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건축사는 수동적 생존의 가능성이야말로 평등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청소년, 노인 등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건축물의 사용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파악해야 한다. 위험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지진, 산불, 홍수, 전염병, 가뭄, 폭염, 토네이도, 허리케인, 해수면 상승 등 환경적 요인이다. 치안 불안, 공공 서비스 중단, 인프라 노후화, 도시 정전, 총기 사건, 전쟁 등 사회적 요인도 있다. 건축사는 기본 설계 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기후 모델을 분석하고 이를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축물이 현재와 미래에 유연하게 활용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 건축물은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을 받기 쉽다. 그런 만큼 지속 가능한 활용을 위해 시대를 포괄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내부 내력벽이 없는 높은 천장과 깨끗한 공간으로 최대한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좋다. 기둥, 측면 시스템, 바닥 높이 등 미래에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게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용이한 해체를 위해 용접보다는 볼트 연결을 사용하고, 내부 벽을 비내력으로 만들거나 석고 벽판 파티션을 사용해 재활용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진=AIA
(사진=AIA)

AIA는 하와이 오아후 포드섬에 위치한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 다니엘 K. 이노우에 지역 센터를 유연성과 적응성, 수동적 생존 가능성 등 탄력적인 설계를 반영한 훌륭한 사례로 꼽는다. 인간과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건축물은 자연 재해나 인재 발생 시 비상 대응도 가능하다

NOAA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격납고로 쓰이던 건물을 재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지역 문화와 생태계를 통합하는 고성능 연구와 사무실, 캠퍼스 등으로 사용된다. 이곳에서는 태평양 쓰나미 경고센터를 비롯해 환경 예측, 해양 관리 업무 등이 진행된다.  

건축물의 용도에 맞게 NOAA는 해수면 상승과 폭풍, 홍수 등으로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설계가 적용됐다. 자연 재해나 인재 발생 시 NOAA는 비상 대응, 의료 및 군사 방어 시설로 전환할 수 있다. 패시브 시스템, 채광과 건물 중앙의 백업 발전기로 3일간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

기존 격납고 였던 NOAA는 인공 조명 없이 채광을 확보했다. 햇볕을 포착하고 반사하는 특수 제작된 조명 랜턴을 적용해 건물 안쪽까지 빛을 비추게 했다. 또한 바닥에 반투명 반사판을 설치해 햇빛을 분산시키고, 다시 천장으로 반사시켜 등기구로 활용했다.  

기존 배수 시설의 문제도 보완했다. 빗물 대부분이 항구로 직접 유입되던 것을 막고 빗물 수집을 위한 바이오 필터를 설치했다. 빗물 보유 탱크로 이어지는 집수 장치를 지붕 전체에 설치해 빗물을 정화한 후 화장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NOAA는 부지와 기존 건물의 역사적 특징, 오아후라는 외딴 지역을 감안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건축을 진행했다. 주요 재료도 오히아 나무와 현무암 석재 등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다. 또한 건설 폐기물 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재료의 재사용과 재활용, 공급업체 회수 등을 통해 폐기물을 95%까지 줄였다

건축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AIA가 제안하는 열 가지 프레임은 큰 틀에서 사람을 위한 디자인, 자연 환경 변화에 따른 디자인,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의 디자인을 아우르고 있다. 다음은 프레임워크의 마지막 편인 발견을 위한 디자인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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