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동엽 건축사
추동엽 건축사(사진=추동엽 건축사)

언제부터인가 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부차적인 존재(차량이나 온갖 잡동사니)를 위해 존재하는지 말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공간 중 가장 큰 곳은 집 앞 골목이었다. 골목은 자치기, 제기차기, 구슬놀이, 딱지치기 등 모든 놀이가 이루어지는 놀이터였고, 공만 하나 있으면 축구장이 되기도, 농구장이 되기도 하였다. 길쭉한 나무 의자 하나만 내놓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고물 아저씨의 가위 소리에 온갖 걸 들고 나와 마주하고, 두부 장수가 아침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부를 팔던 곳이 집 앞 골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택가 집 앞 골목은 이면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건축물 주위의 모든 길은 도로라는 이름이 주어져 있다. 즉 길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차량의 통행과 주차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전용되고 말았다. 

건축법 제44조 대지와 도로의 관계로 인하여 대부분의 대지는 도로와 면하여야만 건축행위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주차장 확보가 건축행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여서, 사람을 위한 길의 의미는 퇴색되고, 차량의 접근성만을 따지는 공간 구성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속도를 중시하는 세태와도 맞물려 우리는 능률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건축을 하고 공간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은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시가 만들어지면 속도와 효율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사람이 우선시되는 조금 느린 공간을 만들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분리하며, 차를 세우고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이웃 주민의 가게에 들러 저녁거리를 장만하고, 서로의 안부와 이웃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이기만 할까? 

어쩌다 보니 우리의 일이 ‘개인이 개별화된 공간에서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공간 만들기’에 너무 치중되어 있어,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방법은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울 따름이다. 건축사란 이름으로 건축물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사람 냄새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우리의 수준을 한 층 더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사념에 빠져 있다 보니 예전 고 김수근 선생이 쓴 책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라는 구절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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