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순 건축사(사진=홍인순 건축사)
홍인순 건축사(사진=홍인순 건축사)

어느 덧 8년차 건축사. 소속 건축사로 지내다 독립 선언을 하고 보니 직원으로 일할 때는 몰랐던 직접 챙겨야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내기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도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또 하나씩 자리를 잡아간다는 마음으로 크든 작든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시작했다. 
어느 날 현장에서 만난 한 거래처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건축사님, 일은 한방이잖아요. 큰 건 하나만 하면 되잖아요.” 처음에는 그 말이 참 불편하게 다가왔다.

업무지식과 기술, 경험이 쌓여서 내공이 되고, 인연이 될 건축주를 만나는 과정에 노력이 있으며 그에 따른 마땅한 설계비를 받는 것인데, 과정은 모르고 한 건만 잘하면 큰돈을 쉽게 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방’이란 말이 지금까지 일해 오면서 희망이 된 듯하다. 돈이든 명예든 사람이 되었든, 뭔가 ‘한 방’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을 해왔다.

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삶은 계란을 포장·유통하는 영세 제조업체 건물을 설계하게 되었다. 처음 건물을 지어보는 건축주는 협소한 공간을 알뜰히 사용하기 위해 고민을 했고 필자 또한 그런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하며 설계를 마무리했다.

최종설계비를 건축주에게 청구를 했고, 그때부터 몇 날 며칠 건축주에게 시달렸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만나자하니 다음 날 사무실로 삶은 계란 한 판을 가지고 와서는 설계비를 10만 원만 깎아 달라 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며칠 동안 10만 원짜리 삶은 계란을 참 맛있게 먹었다.

계란이 인연이 되었는지 얼마 후 한 계사(닭 키우는 농장)의 양성화 업무를 맡게 됐다. 업무를 마무리하니 농장주는 혼자서 금방 다 먹을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계란을 또 선물로 주셨다. 그 해 대구건축비엔날레 행사 중 ‘어린이 건축학교’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어린이들의 작품 만들기 과제를 위해 종이 계란판을 대량으로 준비해야 했다.

행사 하루 전까지 구하기가 힘들어 인연이 있었던 계사의 농장주에게 연락해 드렸더니, 즉시 계란판 600개를 보내주시고 좋은 일에 사용된다니 비용도 받지 않으셨다. 아마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이 된다. 그 외에도 농사용 창고를 짓고 쌀 포대를 선물 받은 일 등도 있다.

돌이켜보면 사람을 만나고 인연이 되고, 웃을 일들이 생기는 건축사라는 직업이 내 인생에 ‘한 방’이지 않나 생각된다. 

최근 협회에 물어보니 작년대비 허가 건수가 4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높은 금리에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자재 단가,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가 직격탄이 된 듯하다. 
그럼에도 즐겁게 건축사 생활을 하려고 한다. 건축사는 ‘한 방’이 있으니까!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한 방’이 되어 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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