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건축사
김동희 건축사(사진=김동희 건축사)

양평에 살게 된 지 5년이 된다. 개업한지 14년째…. 개업하고 처음 구매한 차를 10년째 몰고 있다.
차를 몰고 5년쯤부터는 잔고장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는 몰던 차를 빨리 처분하고 좀 더 안전한 차, 본때 나는 차를 몰아야지 하면서 스스로 기대감에 부풀었다. 결국 때를 놓치고 거의 10년을 몰게 되었고 주행거리가 약 35만 km를 찍었다. 주위에서 속마음도 모르면서 계속 바꾸라고 하는 이야기가 잦았고 차는 주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집을 양평군 옥천면에 짓고 나서 출퇴근 거리도 그전보다 멀어지고 연료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쯤부터인가 차량 연비가 계속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날 때마다 체크해 보았다. 리터 당 20킬로미터는 기본이고 잘 나올 때는 22킬로미터를 넘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약 50킬로미터가 되다 보니 연비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같은 차종으로 차를 바꿀까 말까 고민도 하게 되었다. 누추한 차를 몰고 다니면 수주가 어렵다는 편견이 이미 사라진 때라, 잘도 굴러가고 고칠 것 다 고친 차량이라 더 이상 고장 날 것도 없는데 36만까지만 타볼까? 농담처럼 생각했던 것이 벌써 코앞까지 온 것이다.

굳이 36만이냐고 한다면 차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은 아시겠지만 12만 단위로 엔진 내부 벨트를 갈아야 하는 내연기관차의 속성상 가장 수리비가 많이 들어가는 지점이 12만 단위가 된다. 그래서 그 결심을 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48만을 도전해 볼까 마음이 바뀌고 있다. 오히려 ‘누추한 오래된 차가 환경을 살리는 차량이 되는가?’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15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럽에서는 고급 차량을 선전할 때 기능적인 성능을 내세우기보다 환경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고려해서 만들었는지 홍보한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 차를 구매한 환경주의적 입장의 오너가 차는 몇 년에 한 번씩 바꾼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과거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건축자재로 목재를 많이 사용하면 자연 파괴가 된다는 논리는 과거의 일반적으로 통용된 이야기이지 목재를 잘 사용할수록 탄소중립 정책과 지구 환경을 살린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콘크리트구조 건축은 생산과정에서 많은 지구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것처럼 차를 일 년이라도 더 탈 수만 있다면 더 몰고 다니는 것이 지구 환경을 살리는 길이 아닌가 나름의 생활철학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이 일련의 생각의 변화는 전원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 살고 있는 전원생활인으로서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항아리 바비큐를 직접 해 먹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엔진 소리가 클 뿐이지 육안으로 보는 매연의 정도와 다른 기능은 크게 문제가 없다. 엔진 소리 큰 것도 큰 지장을 못 느끼는 것은 아주 고가의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이 차는 소음 순위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마음속에 있었던 청과 적은 어떤 의미도 없다. 사물을 분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멀리 보는 삶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시크릿]이란 책이 서양적 종교색이 난다고 안 읽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더 해빙]이라는 책은 동양적 종교색이 나니 읽어보라고 권할 필요도 없다. 두 책은 비슷한 자기개발서인데 굳이 한 권을 권할 이유는 없고 둘 다 읽기를 권하고 싶고 그 어떤 선택도 본인이 하는 것이다.

마당에 앙상한 잎이 하나도 없던 90센티미터 크기의 묘목 한 그루가 2년의 기다림을 버티다가 올해 겨우 초록 나뭇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엇을 못 기다리겠는가? 마음속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그 어떤 건축을 하고 있는지 정리가 안 되어서 아직 세상에 빛을 못 보고 있을 뿐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만 삶에 대한 태도가 명확히 정리된다면 건축도 우리에게 큰 희망과 만족감을 싹 틔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과거에 희망찬 대가들의 디자인을 보고 따라 하고 싶었던 디자인보다 내 속에 숨은 디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자꾸 이야기한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재능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고 내놓을 만한 것이란 것을 느낄 때, 적과 청의 극단적인 선택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색을 가진 각자의 건축이 모여서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숲을 만들 수 있는 건축사의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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