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려 군위읍을 지나 금성면 방면으로 약 3㎞를 가면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있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이 나온다. 사랑과 나눔공원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계승하고자 추기경의 생가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 하였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
김수환(金壽煥, 1922년 7월 2일 ~ 2009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본관은 광산,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며 아호는 옹기이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수십 년간 군부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과 공동선의 추구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신앙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로마교구의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 성당' 명예주임사제직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김수환은 대구 도심인 남산동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수환의 할아버지인 김익현은 천주교를 신봉하다가 1868년에 발생한 '무진 박해'로 인해 연산에서 관군에게 잡혀 순교하였을 만큼 집안이 대대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김수환이 사제로서 첫 사목 생활을 시작한 곳은 안동성당이었다. 이후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장을 지냈으며, 1966년 마산교구가 설정됨과 동시에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주교가 되었다.

1968년 제12대 서울 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으며,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서울 대교구장 취임사에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라고 밝히면서 교회 쇄신과 현실참여 원칙에 따라 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제시하였다. 또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선의 추구’를 사회 교리로 주장하였다. 취임사와 사회 교리로 인해 젊은 지식인들과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었고, 이후 시국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영향을 미쳤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善終)하였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사랑과 나눔공원
사랑과 나눔공원 도로변 주차장 입구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미소가 깃든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입구를 따라 경사진 곳을 오르면 필로티를 지나 중앙광장이 나오며 광장을 감싸 안으며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전면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아호였던 ‘옹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옹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박해와 신앙의 상징이었다.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신자들은 옹기를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였고, 김수환 추기경의 부모도 그렇게 신앙을 지킨 가난한 옹기장수였다. 그의 삶은 음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옹기를 그대로 닮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신앙을 키웠던 생가의 바로 앞에는 옹기가마와 우물이 있다. 생가의 옆으로 ‘평화의 숲’으로 오르는 십자가를 형상화한 계단이 있으며, 이 계단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나서부터 선종하였을 때까지의 일대기를 적어놓은 글말들이 보인다.

공원 내 복원되어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초가삼간 옛집의 모습에 좁은 툇마루와 낮은 처마가 정감을 더해준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추기경의 삶과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회고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추억여행이 될 것이다.

[출처 : 위키백과]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금성로 270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