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철 건축사(사진=조명철 건축사)
조명철 건축사(사진=조명철 건축사)

과거에 화장실은 가까이 두기엔 꺼려지던 공간이었다. 속담에 ‘사돈집과 뒷간은 멀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돈집 사이에는 말이 나돌기 쉽고 뒷간은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멀수록 좋다는 의미였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 형편이 어디 그런가? 집집마다 자녀를 한두 명밖에 두지 않다 보니 사촌은커녕 사돈네 식구 말고는 인척이 없어서 사돈집을 가까이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보인다. 뒷간도 마찬가지다. 생리적 현상이 흠이나 되는 듯 남몰래 처리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욕실 문화가 발달했고 이름도 화장실(化粧室)로 바뀐 지 오래다.

‘볼일’만 보던 ‘변소(便所)’가 화장을 하는 방으로 변화하더니 뒷간은 수세식 변기를 앞세워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남성(男性)인 필자는 집안에서 화장실이 편하지 못하다. 소변을 봐야할 때, 공공장소의 화장실에선 소변기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가정에서는 앉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수치심(羞恥心)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인테리어 설계 의뢰가 왔다. 부부와 딸·아들 두 자녀, 이렇게 4인 가족이 사는 빌라를 수리하는, 그래서 해당 집에서 상담이 이루어졌다. 아내가 의뢰인이었는데 주방의 불편함 해소와 쾌적한 화장실 조성이 가장 큰 희망이라고 했다. 주방은 간단하게 해결될 듯해서 가볍게 넘어갔고 관심은 화장실로 옮겨졌다.

하~얀 욕실, 여느 집에서 볼 수 있는. 필자의 관심은 양변기였다. 짝꿍 소변기 없이 외롭게 있는 양변기. 용기를 내어 아내 의뢰인에게 제안을 했다. 가족의 반이 남성인데 초등학생인 아드님의 남성성(男性性) 교육과 남편분의 가정 내 기(氣)살리기 차원에서 이번에 소변기 하나 설치하자고. 반응은 뜨거웠다. 남편과 아들이 환호했다. 소변기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자신이 여학생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까지 했다.

아내 의뢰인은 놀라는 듯 했다. 가정 화장실에 소변기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혐오시설이라는 말까지 언급됐다. 남성에게 소변기 없는 현실은 부조리(不條理)인데, 여성에게는 혐오(嫌惡)시설이었던 게다. 그 간극을 남성으로서는 좁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가정의 달에 지면을 빌어 여성 건축사분들에게 부탁해본다. 원래는 ‘어머니 날’이었는데 아버지들이 서운해 해서 ‘어버이 날’로 바꾸는 일을 양해해주셨듯이, 가정 화장실에서 남성들이 생물학적 실질 생활이 가능하도록 소변기 설치에 해량(海量)을 한 번 더 베풀어 주시기를 말이다.

참고자료
1. 김당 기고글「선암사에 가거든 ‘뒷간’에 가봐야 하는 까닭」
2.「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주경철 안민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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