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호 건축사(사진=양정호 건축사)
양정호 건축사(사진=양정호 건축사)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수주를 맡은 건축설계는 2층 규모의 전원주택이었다. 첫 수주인 만큼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열심히 했다. 직원으로 일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고, 계획·실시설계 업무를 진행하면서 큰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다. 건축주 역시 공사가 막 시작된 단계에서부터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노후를 설계하고, 커가는 손주의 재롱을 보는 행복한 상상을 그리곤 했다. 어느 날인가 함께 저녁식사도 하며, 그렇게 서로에게 처음이라는 기억을 선물했다. 

필자 역시 학창시절, 집에 대한 부러움과 욕심이 있었다. 작은 집이었고 전세에 살았던 터라, 건축과를 가면 나의 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나의 본업이 될 테니까 남들보다는 쉽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게 천직으로 알고 일을 해오면서 느끼는 점은 집은 모두에게 행복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자주 언급되는 전세사기 뉴스를 접하다보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어떤 이에게는 그 집이 얼마나 불안하고 안타깝고, 또 싫은 공간이 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서민을 위한다는 전세자금 대출이 누구에게는 사기를 치기 위한 먹잇감이 되었다. 저금리로 인한 부동산투기가 판을 쳤고, 연쇄적으로 매매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덩달아 전세가도 높아졌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과 은행대출로 수십 채의 아파트를 샀다. 그런 인과관계로 지금 세입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MZ세대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은 높은 집값 등으로 인해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고 있으며, 결혼한 친구들도 아이를 낳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상승을 막을 순 없다고 하더라도, 또 모든 정책이 모든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해야 할 일 아니던가. 
의식주는 사람이 생활하는데 기본이 되는 요소이고, 그중에 주(住)는 삶을 영위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이 안정되고 희망이 있을 때 사람들은 건축사를 더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진다는 기대가 있을 때, 또 나의 공간과 미래를 위해 고민이 깊어질 때, 설계에 대한 꿈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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