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연구소장(사진=김남국 연구소장)
김남국 연구소장(사진=김남국 연구소장)

지난해 한국 경영계를 강타한 화두는 단연 ESG였다. 전 세계 많은 투자자들이 환경(E), 사회(S)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효과적인 지배구조(G)를 가진 기업에 적극 투자하겠다는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한국 경영계에 ESG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반도체 회사를 필두로 주요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게 직접적 이유다. ESG 전담 부서의 조직원들은 회사의 관심이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며 울상이다. 이들이 개별 사업부에 협조를 요청하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ESG 업무까지 부담을 주냐는 핀잔을 받기 일쑤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환경이나 사회 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생존이 훨씬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다. 과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이름으로 이뤄졌던 기업 활동도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

하지만 ESG는 경제가 어렵다고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닌 것 같다. 거시적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가장 큰 거시적 정치 환경 변화는 고립주의의 확산이다. 미국 정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세운 고립주의 움직임은 거대한 트렌드로 부상했다. 유럽 역시 반이민정책 등 고립주의가 확산하는 추세다. 

고립주의 확산은 글로벌화로 인한 부의 재분배와 관련이 있다. 자유주의와 글로벌화의 물결 속에서 글로벌 부의 거대한 재분배가 이뤄졌는데 그 핵심은 서구 선진국 중산층의 재산이 아시아 중심의 신흥국 중산층으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아시아가 제조업 기지로 급성장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서구 중산층들의 불만이 급격히 커졌고 이런 환경에서 극우 정치 세력들은 민족주의, 고립주의 이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ESG의 부상은 이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애플,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은 제조업 중심의 아시아 기업에 비해 탄소배출량 저감 목표를 보다 쉽게 달성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RE100 움직임에도 서구 기업은 아시아 제조업체에 비해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결국 환경에 대한 규제는 아시아 기업들의 피해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

사회(S)와 지배구조(G) 이슈와 관련해서는 중국 기업들이 특히 취약하다. 유럽연합(EU)은 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1만7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자사는 물론이고 공급망 협력업체까지 ESG 관련 사항을 조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유럽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 경제가 위축되었다 하더라도 ESG에 대한 압박이 줄어들 확률은 낮다. 올 6월에 ESG 공시와 관련한 국제 기준 발표도 예정돼있다. 따라서 ESG는 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ESG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거나, 관련 활동을 리포팅 하지 않는 기업은 서구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고 주요 글로벌 대기업에 물품 공급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ESG는 현실적인 무역 장벽으로 우리 앞에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